김황용 농촌진흥청 기술협력국장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우리나라가 돌연히 상공업의 나라로 변해 하루아침에 농업이 그 자취를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이 변치 못할 생명창고의 열쇠는 의연히 지구상 어느 나라의 농업인이 잡고 있을 것이다.’ 윤봉길 의사가 지은 농민독본의 한 구절이다.
그런데 세계 각지에서 인류의 생명창고를 지키는 열쇠지기가 처한 상황이 심상치 않다. 빈곤으로부터 헤어나기가 버겁고 가혹한 기후변화를 따라잡기 어려우며 젊은이가 도시로 떠나면서 농촌사회의 활력을 유지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우리 농업기술이 개발도상국의 소농에게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신념으로 농촌진흥청은 2009년부터 16년간 해외농업기술개발(KOPIA) 사업을 꾸준하게 추진해 왔다. 경험 많은 농업기술 전문가를 개발도상국 현지 농업연구기관에 파견, 각국의 여건에 적합한 기술을 개발해 보급하는 사업이다. 식량안보 강화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농업기술을 개발해 보급하는 노하우까지 전수, 현지에서 인기가 높다. 현재 20개국에서 KOPIA센터를 운영 중이며 여전히 KOPIA 센터 설치를 원하는 나라가 많다.
KOPIA 사업의 성공 요인은 ‘현장 밀착형 기술보급 전략’에서 찾을 수 있다. 쓸만한 기술을 개발하고 해당 기술을 농촌 현장에 투입해 그 효과를 실증하는 방식이다. 특히 KOPIA 시범마을을 통해 특정 품목에 대한 농업기술 패키지의 완성도를 높이면 국가 전역으로 보급할 만하다.
실제로 파키스탄의 경우에는 우리 수경재배 기술로 무병 씨감자의 생산성이 6배 정도 향상되자, 파키스탄 정부가 앞장서서 250만 달러의 기금을 마련하고 무병 씨감자를 생산해 전국에 보급할 계획이다.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지난해 대통령령으로, 다시 올해는 내각명령으로 KOPIA 사업과 연계해 벼 우량종자 증식센터를 설립하고 벼 생산성을 향상시킬 것을 지시했다.
그런데 우리가 다른 나라의 농업기술 발전을 돕는 이유가 무엇일까? 최근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경제적인 이유로 해외 원조를 급격히 줄이고 있어 이 문제에 대한 진지한 답을 찾아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첫째, 우리 농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개발도상국은 제조업 기반이 약하기 때문에 종자, 비료, 농약, 농기계, 동물약품을 비롯한 다양한 농기자재를 수입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의 농업 생산체계를 전수해 개발도상국의 농업 발전을 도와주면 우리 중소기업의 해외진출 기회가 자연스럽게 확대된다. 한 기업이 단독으로 수출시장을 확보하는 것은 어렵지만 중소기업 간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정부의 국제협력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세계 무대에서 다국적 농기업과도 겨뤄 볼만하다.
둘째, 세계 각국의 다양한 기후, 식생, 토양 조건에서 획득한 정보는 우리 농업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기후위기를 극복할 연구 역량을 강화하는데 필수적이다. 폭염, 가뭄, 호우 등 전례 없는 기상이변에 대비해 우리 농업의 회복탄력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고 아직 우리나라에 침입하지 않은 심각한 검역 병해충에 대한 대책을 선제적으로 마련할 수도 있다.
셋째, 가난한 나라에서 농업소득이 늘면 농촌 주민들의 삶이 달라진다. 어린 자녀가 부모와 함께 살 수 있고 아플 때 치료를 받아 건강을 돌볼 수 있으며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미래를 꿈꿀 수 있다.
대한민국은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눠 널리 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데 큰 가치를 두고 있다. 그것이 순국선열들이 꿈꾸어 온 우리 문화의 힘이며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준다.
앞으로도 KOPIA는 이러한 인류애를 바탕으로 한국 선진농업이 개발도상국의 식량문제 해결에 일조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과 노력을 이어가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