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단단하게 키워준 한농대
농업에 튼튼한 뿌리 내릴 것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스물여섯, 나는 길을 잃은 듯했다. 전공과 무관한 일을 전전하며 지내던 어느 날, 귀농해 버섯을 재배하던 부모님이 “같이 해보자”며 손을 내미셨다. 막막한 미래 속에서 그 손은 하나의 방향이었다. 그렇게 나는 2021년 한국농수산대에 입학했다.

한농대에서 농업은 단순히 땅을 일구는 일이 아니었다. 유통, 가공, 연구, 창업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된 종합 산업이었다. 특히 2학년 때 참여한 인삼특작부의 장기현장실습은 내 진로를 바꾼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건강 문제로 잠시 휴학하고 부모님 농장을 도우며 농촌에 머물던 시기, 나는 뜻밖의 현실을 마주했다. 귀농 10년이 지나도 부모님은 ‘외지인’이었고, 나는 ‘갑자기 나타난 청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마을 행사에 참여하고 농사일을 함께하며 진심을 나누자 어르신들이 먼저 인사를 건네오셨다. 느리지만 분명한 변화 속에서 청년의 진심이 농촌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다.

하지만 졸업을 앞두고는 뜻밖의 일이 생겼다. 교양 과목 하나를 놓쳐 졸업이 한 학기 미뤄졌고, 그 시간 동안 준비하던 청년창업농 신청은 자격 요건과 공고 일정의 혼란 속에서 기회를 놓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이했다. 졸업 전이라는 애매한 신분, 변경되는 정부 일정, 불명확한 기준. 그 사이에서 청년은 쉽게 소외될 수 있음을 절감했다.

우여곡절 끝에 다행히 나는 지금, 버섯 균사체 기반 친환경 포장재를 개발하는 스타트업 ‘바이오룸’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한농대에서 배운 실험 설계, 분석, 협업의 경험이 지금의 나를 단단히 지탱하고 있다. 아직 실험실에 있지만 나의 뿌리는 분명 농업에 닿아 있다. 언젠가 내가 재배한 버섯과 개발한 포장재가 세상에 나가는 날을 꿈꾼다.

한농대는 내게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준 첫 번째 땅이었다.

나는 비교적 늦게 농업에 발을 들였지만, 그 안에서 나답게 살아가는 길을 찾아가고 있다. 한농대에서의 배움은 시작이었고, 농촌에서의 시간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이 글이 또 다른 누군가의 출발에 작은 용기를 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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