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획량 98% 감소‧폐업지원금 ‘0원’…부채문제로 감척도 불가
지난 3년간 조업실적 전무
현행 감척기준, 어획량 많은 어업인만 더 많은 폐업지원금 받는 구조
선원이탈‧출어경비 압박에 조업 어려워
폐업 이후 어업인으로 재기할 수 있게 제도개선으로 퇴로 열어야

[농수축산신문=김동호 기자]

동해구중형트롤어업은 오징어 자원 급감으로 조업도 감척도 하지못하고 있다. 사진은 항구에 정박중인 동해구중형트롤어선.
동해구중형트롤어업은 오징어 자원 급감으로 조업도 감척도 하지못하고 있다. 사진은 항구에 정박중인 동해구중형트롤어선.

 

“감척기간이 되는 지난 3년간 출어자체를 못한 배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선감척을 신청할 경우 폐업지원금이 사실상 0원입니다. 조합원들은 어선을 감척할 경우 부채도 상환하지 못하기에 감척을 신청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12일 경북 포항시에서 만난 김태훈 동해구기선저인망수협 조합장은 조합원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이같이 전했다. 정부에서는 감척지원조건을 꾸준히 개선해왔지만 동해안 일대의 오징어 어획량은 일시에 급감한터라 오징어를 주로 어획하는 동해구중형트롤어업이 심각한 어려움에 처해있다.

동해구중형트롤어업의 현황과 어업인들의 감척제도 개선 요구사항에 대해 살펴본다.

# 달라진 어업환경에 따라가지 못하는 제도

수산자원은 자율갱신성 자원으로 적절하게 이용할 경우 특별한 노력 없이도 자연적으로 회복되지만 공유재이기에 어업인들의 어획노력량 증강으로 고갈의 가능성도 상존하게 된다. 어선감척사업은 어선의 척수를 수산자원량에 적합한 수준으로 줄여 연근해 수산자원량 회복과 어업생산성 증대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어업기술의 고도화에 따른 어획량 증가와 출어경비의 상승이 맞물리며 어업인들의 어려움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유엔 해양법 발효이후에는 어장축소 등도 이어지면서 우리 바다의 어획압력은 크게 높아졌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는 1994년에 처음으로 어선감척사업을 시작한 이래 꾸준히 어선을 감척하고 있으며 2011년 연근해어업의 구조개선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체계적으로 감척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2024회계연도 결산 위원회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1999년부터 지난해까지 일반감척사업으로 1조7366억 원을 투입해 2만439척의 어선을 줄였고 1999년부터 2002년까지는 어업협정체결에 따른 어업인 등의 지원 및 수산업발전 특별법에 따른 국제감척사업으로 6443억 원을 투입, 1308척을 감척했다.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 어선을 줄였지만 어업여건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으며 특히 최근에는 극단적인 조업부진으로 인해 일부업종은 자율감척을 신청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실정이다.

 

 

# 동해구중형트롤, 어업생산량 98% 감소

극단적인 조업부진으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대표적인 업종은 동해구중형트롤어업이다. 오징어를 주로 어획하는 동해구중형트롤어업의 생산량은 2005년 3만63톤에서 2009년 5만7400톤으로 늘었다. 하지만 44년 만에 연근해어어업 생산량이 100만 톤을 하회했던 2016년에는 2만6473톤으로 줄었고 2018년에는 7448톤까지 감소했다. 2022년부터는 어업인들이 조업부진을 이유로 출어를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면서 2022년 2725톤, 2023년 1233톤, 지난해 1424톤 등을 기록했다. 최근 20년 중 어획량이 가장 많았던 2009년에 비하면 어획량이 98% 가량 감소했다.

어획량의 급감으로 어업생산금액도 급감했다. 2005년 609억 원이었던 어업생산금액은 2011년 1867억 원까지 늘기도 했으나 이후에는 600억~1000억 원 수준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어업생산량이 급감하면서 생산액 역시 급감했다. 2016년 1075억 원이었던 어업생산금액은 2021년 394억 원으로 줄었고 2022년 185억 원, 2023년 20억 원, 지난해 26억 원 등으로 줄었다. 어선을 운용하는데 투입되는 비용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수준이다.

# 폐업지원금은 ‘0’원

동해구중형트롤어업인들은 현 상황에서 감척을 신척할 경우 받을 수 있는 지원금이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해수부의 연근해어선 감척사업 지원사항을 살펴보면 감척대상자로 선정된 선주에게는 평년 수익액 3년분의 100%와 어선‧어구의 잔존가치를 평가해 지급하며 선원에게는 어선원 생활안정자금을 통상임금의 최대 6개월 분으로 지급한다.

해수부는 폐업지원금의 비율을 높여달라는 어업인들의 요구에 맞춰 지원비율을 100%까지 끌어올리는 등 지원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극단적인 조업부진에는 이같은 제도개선이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해수부의 지원기준은 최근 3년간 발생한 수익액의 일정 수준을 보장하는데 지난 3년간 출어자체를 못한 어업인은 받을 수 있는 것이 노후선박의 잔존가치를 지급받기에 그치기 때문이다.

선박의 가치가 낮은 것은 현행 제도에서 기인한 측면도 있다. 동해구중형트롤어선은 기존 선박이 배 뒤에서 그물을 끄는 선미식 트롤이라하더라도 배를 신조할 경우 측면에서 그물을 사용하는 현측식으로 건조해야한다. 이 때문에 그간 동해구중형트롤어업인들은 배를 신조하는 대신 큰 돈을 들여 배를 보수해왔다.

장유진 동해구트롤연합회장은 “지난 3년간 회원들의 대부분이 사실상 조업 자체를 못해 어업수익은커녕 조업실적조차 전무한 상황”이라며 “현재의 감척기준은 어업생산량이 많은 어업인이 더 많은 폐업지원금을 받는 구조로 동해구트롤어업인은 폐업지원금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태훈 조합장은 “배를 신조하면 현측식 트롤로 변경해야하는데 동해구트롤에서 발생한 46건의 사망사고 중 45건이 현측식에서 발생하는 등 안전성에 문제가 있는 데다 선원들은 현측식 트롤어업의 경우 수작업이 많아 승선을 기피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 때문에 한 조합원은 선미식 트롤방식을 유지하고자 노후선박에 10억 원을 들여 철판을 모두 교체했지만 이 배를 감척하면 받을 수 있는 감정평가액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 폐업하는 선사…조업도 감척도 못해

오징어 자원감소로 인한 조업부진은 동해구중형트롤어업인들이 조업도 감척도 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 수년간 이어진 극단적인 조업부진으로 동해구중형트롤선원들이 모두 이탈한 상황이다. 동해구트롤어업은 연간 5개월 가량 조업하는 어업으로 간부선원을 중심으로 팀을 꾸려 어선에 승선해 조업한다. 하지만 조업 부진으로 선장과 기관장에 대해서만 대기수당을 지급하며 선원을 유지하려했으나 기간이 길어지며 이들도 모두 이탈했다. 즉 오징어 어획량이 늘더라도 선원 구인난으로 조업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선박 검사도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장기간 조업을 하지 않으며 적지 않은 선박이 조업을 위해서는 기관개방검사를 받아야만 출어가 가능하다. 기관개방검사에는 5000만 원 가량의 비용이 발생하기에 경영난이 심각한 어업인은 기관개방검사 비용도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이같은 비용을 모두 감내하고 조업을 나갔는데 어획실적이 좋지 않을 경우 경영압박은 더욱 심각해진다.

그렇다고 감척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현재 동해구중형트롤어선의 대부분은 금융권의 담보로 질권이 설정돼있다. 정부의 감척사업을 통해 받는 금액이 채무액보다 적을 경우 금융권에서는 설정된 질권을 해지해주지 않을 공산이 크다. 즉 어업인이 감척의사가 있다하더라도 채권자의 반대로 감척이 불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업인 자격 역시 문제로 지목된다. 동해구중형트롤어업인들은 지난 3년간 조업실적이 전무한 경우가 많은데 이는 120만 원 이상 또는 60일 이상 조업이라는 법정 어업인 기준에 미달한다. 물론 해수부에서는 중앙수산조정위원회의 특별심의를 통해 일부 업종의 경우 조업실적에 미달하더라도 감척을 허용하고는 있지만 어업인들에게는 이 역시 리스크로 여겨지고 있다.

김 조합장은 “지난 3년간 출어를 못하면서 어업인들은 연간 수억 원의 고정비용이 들어가 경영난이 매우 심각한 상황으로 이미 2척의 배는 부도가 난 상황”이라며 “어업인들이 동해구중형트롤어업을 계속 이어나가지는 못하더라도 폐업 이후에 어업인으로 재기할 수 있도록 길은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도훈 부경대 교수는 “동해구중형트롤어업은 오징어 어획감소로 경영난이 심각한 만큼 부도가 나도록 방치하는 것이 아닌 감척을 통해 퇴로를 열어주는 것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감척을 지원하되 부채를 탕감해주는 수준으로 과도하게 지원할 경우 다른 어업의 감척사업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경영주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임태훈 해수부 어업정책과장은 “감척을 위해서는 조업실적 등 어업인 자격을 갖춰야 하나 동해구중형트롤어업처럼 자원이 급격히 감소한 경우 중앙수산조정위 의결을 거쳐 예외를 허용하고 있다”며 “향후 감척사업도 탄력적으로 운용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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