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생활서비스조차 미비한데 섬 정책은 개발사업에만 집중
480개 섬 81만여 명 거주
의료‧교육‧보육시설 없는 유인섬 다수…‘서비스 사각지대’ 심각
식품 사막화‧육지보다 비싼 비용구조
주민들은 불편 감내
도서 법개정 수요 폭넓게 반영한 제도개편 필요
주민 삶 중심 행정체계
사회서비스 보장 시급

[농수축산신문=김동호 기자]

유인섬이 무인섬으로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섬 지역 삶의 질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사진은 전남 신안군에 위치한 섬 전경.
유인섬이 무인섬으로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섬 지역 삶의 질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사진은 전남 신안군에 위치한 섬 전경.

 

480개 섬의 81만3475명. 섬 발전 촉진법의 ‘만조시 바다로 둘러싸인 지역’이라는 기준에 충족하는 도서는 480개이며 그 섬에 거주하는 인구는 81만3475명이다. 한국섬진흥원은 누리집에서 유인섬을 단순히 사람이 사는 공간을 넘어 대한민국 영토주권의 최전선이자 삶의 터전으로 정주인프라 정책지원과 생활권보호의 중심이라고 밝히고 있다.

영토주권의 최전선에서 삶을 영위하는 섬 주민들에게 섬진흥원이 밝힌 내용은 화려하지만 그 내면은 공허한 말의 성찬에 불과하다. 기본적인 생활서비스도 보장받지 못하는 섬 지역 주민에게 섬 정책의 소관부처가 행정안전부인지 해양수산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결국 주민들의 삶과 섬 정책은 괴리돼 있기 때문이다.

# 섬 대다수, 보건‧의료‧교육‧보육 시설 없어

국내 유인섬의 대다수는 보건‧의료와 교육‧보육 등 기초적인 사회서비스조차 공급받기 어려운 여건인 것으로 조사됐다.

섬진흥원이 발표한 ‘2025년 유인섬 현황조사’에 따르면 약국을 제외한 보건‧의료시설을 보유한 섬은 192개, 교육‧보육시설을 갖춘 섬은 99개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연륙된 도서지역을 제외하면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현행 섬 발전 촉진법에 따르면 섬은 만조시 바다로 둘러싸인 지역으로 제주특별자치도 본도와 방파제, 교량 등으로 육지와 연결된 때로부터 10년이 지난 섬은 제외한다. 섬진흥원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480개의 섬 중 연륙되지 않은 섬은 377개다. 보건‧의료시설을 갖춘 섬 192개소 중 57개의 섬이 육지와 연결된 섬 지역이며 교육‧보육시설을 갖춘 섬 99개 중 39개가 연륙된 섬이다.

이를 감안하면 연륙되지 않은 도서 377개소 중 보건‧의료시설을 갖춘 섬은 35.8%에 불과하고 교육‧보육 시설을 갖춘 섬은 15.91%에 불과하다. 대다수의 섬 지역에는 기초적인 사회서비스가 공급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도서지역의 열악한 환경은 삶의 질 만족도 조사결과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실시한 2024년 삶의 질 만족도 조사결과를 살펴보면 섬 어촌지역의 보건‧복지에 대한 만족도는 4.05점으로 연안어촌 5.49점, 도시어촌 6.34점에 비해 크게 낮았다. 교육‧문화 역시 3.01점으로 연안어촌 4.34점, 도시어촌 5.21점에 비해 크게 낮은 수치를 기록했으며 정주기반 5.57점, 경제‧일자리 3.91점 등 주요 부문에서 연안어촌에 비해서도 0.66~1.44점이 낮고 도시어촌에 비해서는 1.07점에서 2.29점까지 격차를 보였다.

이마저도 객관적인 수치라고 보기 어렵다. 만족도 조사는 개인의 주관적인 평가로 평생을 섬에서 살아온 주민들은 사회서비스나 생활서비스에 대한 기준이 도시지역 또는 연안어촌에 비해서도 낮을 수밖에 없다. 즉 객관적인 기준이 마련된다면 섬 지역은 도시는커녕 연안어촌에 비해서도 서비스 공급수준이 크게 낮을 공산이 크다.

# 섬에 산다고 불편함을 모르겠는가

“어쩌면 섬에서 안되는 것이 많다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소악도 주민들은 간단한 물건을 사려고 해도 목포나 지도로 나가야 하는데 이제까지는 그게 너무 당연했죠. 그런데 막상 해수부가 어복장터라는 이름으로 마을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도록 해주니 너무 편했습니다.”

지난 21일 전남 신안군 소악도에서 만난 한 청년은 자신 역시 평생을 섬에서 살아왔기에 불편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왔다고 말한다. 사실 ‘어복장터’라는 이름으로 섬을 순회하며 생필품과 식료품 등을 판매하는 것이 혁신적인 시스템은 아니다. 군부대에서는 이미 수십년 전부터 군부대내 매점(충성클럽)을 이용할 수 없는 전방부대 장병들을 대상으로 ‘황금마차’라 불리는 이동형 매점을 운영해왔다. 간단하게 해결할 방안이 있음에도 섬 주민들은 기초적인 생활서비스를 받지 못한 채 읍 소재지 등에서 열리는 5일 장에 직접 가서 식료품과 생필품을 구매해야만 한다. 읍 소재지 등 큰 섬이 아닌 이상에야 사실상 식품사막화 속에 방치된 삶을 살아온 것이다.

전자제품의 수리 역시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전자제품이 고장났다고 해서 가전제품 제조사 측에서 AS를 제때 해주지 않는다. 이 때문에 섬 지역 주민들은 인근 지역의 사설 서비스센터를 이용할 수밖에 없으며 그 비용 또한 육지지역에 비해 비싸다.

# 주민은 사라지고 부처간 알력만 남은 섬 행정

해수부가 섬 사무를 관장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정작 해수부는 섬 행정을 가져가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해수부의 부산이전을 앞두고 김도읍 의원(국민의힘, 부산 강서)은 해수부가 섬 사무를 관장하도록 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법률 44조에서 섬 관리에 관한 사무를 해수부가 관장하도록 했다. 하지만 정작 전재수 해수부 장관은 섬 행정을 이관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강제윤 섬연구소장은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지난달 자신의 칼럼이 게재된 이후 전 장관이 전화해 행안부의 섬 업무를 해수부로 이관시키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고 전했다.

해수부 출범 이후 해수부는 유인도서 업무가 행안부의 소관이기에 섬 주민들의 삶의 질에 무관심했고 행안부는 정주여건 개선을 이유로 개발사업에만 골몰했다. 행안부가 발표한 도서관련 정책 중 핵심적인 사업은 도서종합개발계획에 따른 개발사업들이다. 2018년부터 2027년까지 적용되는 제4차 개발계획에 따르면 1조3115억 원의 국비와 2017억 원의 지방비를 투입해 섬을 개발하는데 사업의 부문별 투자계획을 보면 어업기반조성에 4121억 원, 도로에 3099억 원, 관광기반조성에 2814억 원, 연륙‧연도교에 2339억 원 등 대부분이 기초인프라 개발사업이다. 해수부가 도서지역에 시행하는 사업 역시 어항 조성‧관리, 어촌뉴딜300사업, 어촌신활력증진사업 등 대부분 인프라 조성에 국한돼 있는 실정이다.
두 부처 모두 인프라 개발에만 집중하는 사이에 섬 주민들은 불편함을 감내할 수 밖에 없었다. 국민의 삶의 질이라는 본질이 사라지고 섬 사무의 주도권을 두고 부처간 알력만 남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대목이다.

# 주민 삶 중심의 행정체계 마련돼야

섬 지역의 인구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결국 주민의 삶을 중심에 두고 행정체계를 구축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법령상 유인도서 사무는 행안부, 무인도서 사무는 해수부로 이원화돼 있다. 하지만 섬 지역의 핵심적인 산업은 수산업이며 섬 지역의 대부분은 어촌으로 분류된다. 또한 어업인 삶의 질 개선 관련 사무는 해수부의 소관이다. 행안부와 해수부 모두 유인섬과 관련한 행정을 다루고 있지만 사실상 주민의 삶의 질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있었던 것이 현실이다.

이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행정체계를 부처의 업무 범위가 아닌 주민의 삶을 중심에 놓고 수립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섬 지역 주민의 발이라고 할 수 있는 해상교통부터 식료품 구매 등 기초적인 생활서비스와 교육‧의료 등 사회서비스의 공급, 인프라 구축 등 삶의질 문제를 종합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진경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민 삶의 질 개선을 위한 도서개발정책 추진방안에 관한 연구’ 논문에서 “낙후돼 있는 도서에 거주하더라도 정책상 배제되지 않고 육지와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보장받으며 생활인프라와 공공서비스에 균등하게 접근할 수 있고 경제적으로도 포용돼야 한다”며 “대내외적인 환경변화와 제도수요를 반영해 도서개발촉진법 을 (가칭)도서민 삶의 질 지원법, (가칭)도서민 삶의 질 향상 및 도서지역 개발촉진에 관한 법률 등으로 개정하고 그동안 누적된 도서민의 법개정 수요를 폭넓게 반영하는 제도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수산업계의 한 전문가는 “‘국민이 주인인 나라, 이재명정부 123대 정과제’에도 대한민국 섬 주민의 사회적 기본권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며 “부처 보조금을 지자체 자율편성으로 전환한다고는 하지만 인구과소지역과 접근성이 불리한 섬 지역은 오히려 더 위축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섬 지역에 대한 삶의 질 기준을 별도로 마련하고 해수부와 행안부는 지자체가 책임감을 갖고 기준을 충족시키도록 세부이행계획과 기준 달성정도를 점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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