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꿀 등급제·품질관리제 참여 필수…천연벌꿀 품질·우수성 입증해야
국내 벌꿀 거래 70% 지인 거래
품질미보증…가격 투명성 부족
로열젤리 등 양봉산물 홍보
밀원식물 확충…양봉산업 보호를
[농수축산신문=박현렬 기자]
이상기후로 인한 꿀벌 수, 생산량 감소로 인해 양봉농가의 어려움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수입 벌꿀 반입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며 양봉산업을 위협하고 있다.
이에 국내 양봉농가가 수입 벌꿀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사양관리와 더불어 품질관리, 국내산 벌꿀에 대한 홍보 등의 전략을 펼쳐야 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기후 위기 변화 속 양봉 현장과 양봉농가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방안을 짚어봤다.
# 폭염 속 꿀벌 피해 지속
올해 더운 날씨로 말벌의 활동이 증가하며 꿀벌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방업계에 따르면 말벌은 보통 8월부터 10월 사이에 개체수가 증가하나 올해는 5~6월경부터 기온이 높게 형성되자 일찍 출몰하면서 꿀벌에 직격타를 입히고 있다.
강원도 영월의 한 소방공무원은 “6월경부터 말벌집을 제거해달라는 신고가 평년보다 늘었고 실제 현장을 방문하면 양봉농가에서 피해를 호소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말벌 몇 마리가 봉군의 벌을 죽이는데 걸리는 시간이 짧기 때문에 일찍 발견하지 못하면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원도 양구의 한 소방공무원도 “최근에는 도시에서도 말벌 관련된 신고가 접수되는데 농촌지역의 경우 여름철의 주요 신고는 물놀이 안전사고나 말벌과 관련된 피해 신고”라며 “실제 말벌이 꿀벌을 사멸하는 장면을 봤는데 순식간이었다”고 전했다.
# 마트린 이슈에도 베트남산 수입 증가
농림축산식품부의 ‘2023 기타 가축 통계’에 따르면 꿀벌 사육 가구와 봉군은 2021년 2만7583호, 269만여 봉군에서 2023년 2만6696호, 257만6000여 봉군으로 감소했다.
국내 사육 농가와 봉군 수는 줄고 있는 반면 수입 벌꿀 반입량은 꾸준히 늘고 있다.
농협경제지주 축산경제에 따르면 벌꿀 전체 수입량은 2023년 1425톤에서 지난해 2138톤으로 증가했으며 올해도 지난달 기준 1103톤이 국내로 반입돼 12월까지 수입되는 양이 지난해보다 많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국양봉협회와 한국양봉농협이 매년 수입벌꿀에 대한 검사를 실시해 중국산과 베트남산에서 마트린 성분이 검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음에도 베트남산 벌꿀 수입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베트남산 벌꿀 반입량은 2023년 408톤에 불과했으나 지난해에는 1161톤을 기록하며 2배 이상 증가했다. 올해도 1월부터 지난달까지 723톤이 반입된 걸로 나타나 12월까지의 반입량이 지난해보다 많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유럽의 경우 2021년 중국산 천연꿀에서 마트린 성분이 검출됨에 따라 유럽연합(EU)이 중국산 천연꿀에 대한 잠정 수입 중단을 내린 바 있다.
마트린을 다량 섭취할 경우 신경마비 등의 증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지만 아직까지 베트남산 수입벌꿀의 국내 반입은 문제없이 이뤄지고 있다.
식품의 안전과 관련된 정책을 펼치고 있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관련 기준을 만들지 않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천연 살충제로 쓰이고 있는 만큼 큰 문제는 없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원도의 한 양봉농가는 “다른 국가에서 마트린 성분이 국민 건강에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수입을 중단했음에도 식약처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수입벌꿀을 섭취한 소비자가 신경마비 증상을 보여야 관련 기준을 만들것인지 이해를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 국내 벌꿀 거래 70% 이상 직거래
양봉농가의 주요 소득으로 꼽히는 국내산 벌꿀의 품질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벌꿀 문제와 관련해 품질 미보증, 가격 투명성 부족으로 인한 소비자 신뢰 하락 등을 꼽는다.
최진 농협경제지주 특수가축팀장은 “벌꿀 국내 거래의 70% 이상이 주변 지인 등을 통한 직거래이기 때문에 자세한 품질이나 가격 형평성 등을 담보할 수 없다”며 “일반적으로 국내산 벌꿀 가격이 kg당 3만 원가량이라고 하는데 지역과 판매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 밝혔다.
축산물품질평가원이 과학적인 품질 분석과 검사로 국내산 천연 벌꿀의 품질을 평가하는 벌꿀등급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실제 벌꿀등급제에 참여하는 양봉농가는 전체의 10% 정도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양봉업계 한 관계자는 “축평원에서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품질 좋은 꿀을 구입하고 양봉농가는 등급제를 통한 소득 증대를 꾀하고자 벌꿀등급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실제 양봉농가의 참여는 10%도 될까 말까”라며 “국내산 천연벌꿀의 품질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축평원의 벌꿀등급제나 농협의 품질관리제 참여를 확대해야 하지만 양봉농가들의 의지가 부족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소비자들이 천연 벌꿀에 대한 품질과 우수성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수입산이나 사양꿀 보다 비싼 천연 벌꿀을 구매할 가능성은 점차 줄어들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박종갑 농협경제지주 축산지원국장은 “일반적으로 사양꿀이나 베트남산 꿀의 경우 kg당 1만 원 정도인데 천연 벌꿀 가격은 이보다 3배 정도 높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구매 의지가 갈수록 하락할 수 있다”며 “50~60대 이상의 연령층은 부모 세대를 통해 천연 벌꿀을 먹은 기억 때문에 일부 구매를 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가격을 우선으로 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사양꿀이나 수입 벌꿀보다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벌꿀 만큼 양봉산물에 관심 가져야
벌꿀에 대한 홍보뿐만 아니라 양봉산물에 대한 관심 또한 양봉산업의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농촌진흥청은 양봉농가의 소득원 확보를 위해 고품질 로열젤리를 생산하는 꿀벌 ‘젤리킹’ 원원여왕벌을 지난달 5개 지자체 꿀벌자원육성지원센터에 공급했다.
로열젤리는 강력한 항산화 작용으로 면역력 향상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 공급된 젤리킹은 2018년 농진청이 선발한 우수 꿀벌 품종을 교배해 개발했다. 다년간의 생산력 검정 시험과 지역 적응 시험으로 효과를 검증한 후 고품질 로열젤리 생산 꿀벌품종으로 등록됐다.
한상미 양봉과 과장은 “꿀벌 우수 품종 국가보급체계를 통해 양봉농가에 젤리킹이 보급되면 소득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양봉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보장하기 위해 꿀벌 우수품종을 지속적으로 증식·보급하겠다”고 밝혔다.
농진청은 2021년부터 국내 양봉산물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소비를 촉진하고자 양봉요리 경연대회도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 열린 제4회 양봉요리 경연대회에서는 국산 벌꿀의 달콤함과 벌 화분의 고소함, 수벌 번데기의 감칠맛에 막걸리 부산물인 술지게미로 발효의 맛을 더한 초콜릿을 만든 팀이 대상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을 받은 바 있다.
# 밀원식물 확충 필요
양봉산업이 자연환경을 보호하고 화분 매개 활동으로 농산물 생산에 기여하고 있는 만큼 밀원식물을 확충해야 한다는 의견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양봉협회는 양봉산물이 축산물로 분류돼 있으나 산림에서 얻는 임산물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계류 중인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어기구 농해수위 위원장(더불어민주, 당진)이 발의한 이 법률안에는 선도 산림경영단지를 선정할 때 밀원식물 중 목본식물 확충을 위한 특화단지 조성 가능성 등의 요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는 꽃의 수정을 돕는 꿀벌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꿀벌이 꽃가루 등의 수집을 위해 찾아가는 밀원식물 확충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호 양봉협회장은 “기능성을 갖춘 밀원식물을 확충할 수 있는 근거를 명시할 수 있도록 관련 법안이 하루빨리 통과돼야 한다”며 “산림 경영인에게 밀원식물 조성 등을 장려하기 위한 밀원 직불제도 시행도 앞당겨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농식품부는 양봉산업 육성과 지원을 위한 5개년 종합계획을 2022년 수립해 현재 추진하고 있다.
종합계획의 주요 내용은 △밀원 확충·채밀 기간 확대 △병해충 관리강화·우수 품종 개발·보급 △사양관리 신기술 개발·보급·인력 육성 등을 통한 이상기후, 환경변화에 대한 대응력 강화 △전략 연구개발(R&D), 실증시험 등 6대 과제 연구와 시설현대화, 수급 안정·수요 확대 등이다.
이를 통해 내년까지 양봉 농가소득 5000만 원, 양봉산업 규모를 1조 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통계가 나온 2021년 기준 양봉산업 규모는 7208억 원이다.
종합계획의 내용 중 밀원 확충과 채밀 기간 확대와 관련해서는 산림청이 밀원 자원 확충을 위해 노령림·경제림을 벌목·갱신할 경우 헝가리산 아까시 등의 밀원을 매년 3000ha 식재해 면적을 확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한 3~10월 채밀가능한 다층형 복합 밀원숲을 조성해 현재 4개월(4월~7월)의 채밀 기간을 2배로 늘리는 것을 계획으로 잡고 있다.
곽상익 농식품부 축산경영과 사무관은 “밀원 확충과 관련해서 매년 국유림과 공유림, 유휴지를 활용해 3000ha씩 조성하고 있다”며 “밀원식물에 포함되지 않았던 식물의 꽃이 피는 시기 등을 확인해 밀원식물로 개발하는 과정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