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2년 만에 농업 디지털 혁신
핵심 인프라 ‘자리매김‘
산업계·학계·현장 요구 빠르게 반영
초고속 데이터 분석 지원 확대
#농업, 데이터로 재편되다
농업이 더 이상 ‘경험과 직관’에만 의존하는 시대는 지났다. 기후 변화, 병해충, 식량안보 등 복잡한 과제가 얽히면서 농업은 데이터 기반의 정밀한 대응을 요구받고 있다. 이 가운데 농촌진흥청 슈퍼컴퓨팅센터가 출범 2년 만에 농업 디지털 혁신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농진청이 보유한 슈퍼컴퓨터 2호기는 2.9페타플롭스(PFLOPS)의 성능과 5.8페타바이트(PB)의 저장용량을 갖춘 국내 유일 농생명 특화 장비다. 이는 고성능 PC 3600여 대를 동시에 돌리는 것과 맞먹는 수준이다.
#연구 기간, 수년에서 단 몇 주로
성과는 수치로 확인된다. 기존 방식으로 110개월이 걸리던 고추·콩·벼 등 주요 작물 1만5000여 자원의 유전체 분석이 단 두 달 만에 완료됐다. 농약 후보물질 420만 건의 분자 결합 예측은 1년에서 9일로, 13년 치 기후 데이터를 통한 중기 기상 분석은 4년에서 15일로 단축됐다.
이러한 분석 속도 향상은 단순한 시간 절감이 아니다. 신품종 육종, 병충해 대응, 기후변화 예측 등 연구·산업 전반의 속도를 바꾸고, 농업 현장의 의사결정을 앞당겨준다.
#사람을 키우는 슈퍼컴퓨터
농진청은 슈퍼컴퓨터 자체 운영에 그치지 않고, 활용 인재 양성에도 주력했다. 초급·중급·전문가 과정을 통해 653명을 배출하며 연구 현장의 ‘데이터 해석자’ 후보군을 확대했다. 기초적인 리눅스 실습부터 전장유전체 연관분석(GWAS)·리보핵산 시퀀싱(RNA-seq) 분석, 나아가 AI 모델 고도화까지, 농업 연구자들이 직접 슈퍼컴퓨팅을 다룰 수 있도록 설계된 교육이다.
특히 올해 교육과정에는 LLM(거대언어모델) 실습이 포함돼 농업 데이터와 AI 융합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민간·학계와의 연결, 개방형 플랫폼 지향
슈퍼컴퓨팅센터는 농업 연구소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산·학·연 공동 연구를 지원하고 종자기업이나 바이오 기업과의 협력 사례도 늘고 있다. 실제로 분석된 데이터는 플랫폼을 통해 공개되며 육종가나 연구자들이 활용할 수 있다. 이 개방성과 공유가 농업 데이터 생태계를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김남정 농업생명자원부장은 “슈퍼컴퓨터는 농업의 디지털 전환을 앞당길 핵심 동력”이라며 “산업계와 학계, 현장의 요구를 빠르게 반영해 초고속 데이터 분석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
#다가올 3호기, GPU 시대를 준비하다
다만 한계도 있다. 현재 운영 중인 2호기는 기상청에서 2014년에 도입된 장비를 이관받아 운용 중인 만큼, 인공지능 딥러닝에 필수적인 그래픽 처리장치(GPU) 자원이 부족하다. 이에 따라 농진청은 차세대 3호기를 GPU 기반 슈퍼컴퓨터로 도입해 AI 연구 대응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이는 농업 AI 시대, 즉 ‘AX(Agriculture Transformation)’를 위한 포석이다. 병해충 탐지, 자율주행 농기계, 스마트팜 최적화 등 인공지능 농업 기술은 방대한 데이터와 학습 자원을 필요로 하기에, 슈퍼컴퓨터 3호기 도입은 농업 혁신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해외와 어깨 나란히
해외에서도 농업 슈퍼컴 활용은 활발하다. 미국 농무부(USDA)는 '세레스(Ceres)’와 ‘아틀라스(Atlas)’를 통해 농업 모델링과 드론 데이터 분석을 하고 있으며, 일본 국립농식품연구기구(NARO)는 1 PFLOPS급 시스템을 도입해 농업 데이터베이스와 연동하고 있다. 한국의 슈퍼컴퓨팅 역량은 이미 세계 7위 수준. 농업 분야에서도 세계적 흐름에 발맞추며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디지털 농업, 슈퍼컴퓨터가 여는 길
농업의 디지털 전환은 단순히 연구의 효율성을 넘어, 국가 식량안보와 농업 경쟁력, 그리고 농업인의 삶의 질과 직결된다. 기후변화 대응 품종, 신속한 농약 개발, 정확한 수확 예측은 모두 빅데이터와 AI의 힘을 통해 가능하다.
농촌진흥청 슈퍼컴퓨팅센터의 2년은 ‘가능성’을 증명한 시간이었다. 이제 과제는 이 가능성을 얼마나 농업 현장과 산업에 스며들게 하느냐이다.
농업 빅데이터 시대, 초고속 계산 자원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리고 농진청 슈퍼컴퓨터는 그 길을 열어가는 든든한 엔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