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원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식물병방제과 연구관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사람이 병에 걸리면 의사는 증상만 보고 처방하지 않는다. 열이 난다고 모두 감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인지, 염증인지, 혹은 다른 질환의 신호인지 정확한 진단이 내려져야 비로소 올바른 치료가 시작된다. 농작물도 다르지 않다. 잎이 시들거나 줄기가 썩는 증상이 비슷하다고 해도 모두 같은 병이 아니다. 진단이 틀리면 방제도 실패한다. 틀린 진단에 따른 식물 병 방제는 병원의 의료사고와 같다.

농작물의 증상만 보고 병을 단정해서는 안 된다. 잎의 시듦이나 반점, 식물체가 누렇게 변하거나 뒤틀리는 등 비슷해 보이는 증상이라도 양분 문제, 토양이나 기상 환경에 의한 스트레스, 농약에 의한 피해, 곰팡이·세균·바이러스에 의한 병해 등 원인이 전혀 다를 수 있다. 원인을 제대로 짚지 못하면 처방은 빗나가고, 방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몇 해 전, 한 농업인이 병이 생겼다며 이상 증상을 보이는 참취를 들고 찾아왔다. 그는 ‘흰비단병’에 의한 것이라고 했다. 겉으로 보면 하얀 곰팡이 균사체가 보이니 얼핏 맞는 듯했지만 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 전혀 다른 병이었다. 원인은 흰비단병이 아니라 균핵병이었다.

두 가지 병 모두 뿌리 윗부분의 줄기에 하얀색 곰팡이가 끼지만 병원균 종류와 특성, 약제 반응은 전혀 다르다. 그래서 병원균을 분리, 동정하고 농업인에게 차이점을 자세히 설명했다. 이후 균핵병에 효과가 좋은 농약을 찾아 등록을 추진했고 그 결과 유사한 피해가 반복되던 지역에서 피해가 크게 줄었다. 정확한 진단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방제라는 사실을 현장에서 확인한 순간이었다.

딸기에서도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 한 농가에서 딸기가 시들어 죽는다며 사진과 함께 병든 딸기를 보내왔다. 농가는 당연히 탄저병이라고 생각하고 이미 농약을 여러 차례 살포한 상태였다. 그러나 분석 결과 원인은 탄저병이 아니라 역병이었다. 원인을 파악해 역병에 맞는 농약을 처방하자 피해가 진정됐다.

이처럼 병명을 잘못 진단하면 엉뚱한 농약을 치게 되어 효과를 못 볼 뿐만 아니라 쓸데없는 노력과 비용이 더 들어가고 제때 병을 방제하지 못해 피해가 커질 수도 있다. 겉보기에 비슷한 증상이라도 원인이 다르면 방제법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농업 현장에서 식물 병 문제를 접하게 되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원인이 되는 식물 병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농작물 병해 관리의 첫걸음은 ‘정확한 진단’이다. 원인을 바로 알아야 올바른 처방이 가능하고 농업인의 노력과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지금까지는 정확한 진단을 위해 주로 실험실에서 현미경 관찰과 PCR과 같은 분자 진단 등 과학적 방법으로 병원균을 진단해 왔다.

최근에는 현장에서 바로 병을 확인할 수 있는 기술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스마트폰 사진을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AI) 영상 진단, 병든 식물체의 즙액을 묻혀 진단할 수 있는 휴대용 신속 진단키트와 ‘등온 증폭(LAMP)’ 기반의 현장 진단 기술 등이 보급되면서 진단의 효율성과 속도는 과거보다 훨씬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진단 기술이 발전해도 최종 판단에는 여전히 현장의 경험과 전문성이 필요하다. AI와 진단키트는 진단을 돕는 훌륭한 도구이지만 병의 미세한 차이를 읽고 비슷한 병을 구분하며 재배환경과 작물의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올바른 방제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사람의 몫이다.

농업 현장에서 식물 병 방제의 의료사고를 줄이기 위한 정확한 진단은 식물 병 문제 해결을 위한 올바른 단추꿰기와 같다. 보이는 증상만으로 섣부르게 판단하지 않고 병의 원인을 들여다보는 것, 그것이 농사를 살리는 지혜다. 농가의 세심한 관찰과 전문가의 과학적 기술이 함께하는 정확한 진단이야말로 방제를 완성하는 가장 확실한 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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