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수산진흥을 위한 전 방위 헌신과 목숨까지 걸었던 어업협상

- 동·서·남해 제주도에 어종별 양식장 확대 개발
- EEZ 선포…新어업질서에 맞게 연근해어업 개편
- 日·中·러시아 성공적 어업협상…관계자들 찬사

배평암 회장은 1996년 8월 해양수산부 발족 이후 수산자원국장, 어업진흥국장을 거쳐 1997년에 국립수산진흥원장으로 승진, 1999년 5월에 해양수산부 차관보로 우리나라 수산정책의 실질 총수가 되었습니다. 그분은 수산진흥을 위한 전 방위의 노력을 체계적으로 전개하여 우선 연안과 근해, 내수면의 어업 실태와 생산 잠재력을 조사, ‘한국 연안 어장 기본조사서(1988년까지 9권)’, ‘한국 내수면 잠재력 기본조사서(1991년까지 8권)’, ‘한국 연안어업 기본조사서(1996년까지 5권)’ 등 수산자원 기본조사서를 발간하였습니다. 1999년에 ‘기르는 어업 추진계획’과 ‘수산진흥 종합대책’을 수립하고 ‘수산발전기금’을 설치하였습니다. ‘연안어장 목장화계획’에 의해 1999년까지 인공어초 14만3000ha를 시설하고 19개소의 수산종묘 배양장을 건립, 연안 수역에 55억 마리의 수산 종묘를 방류했습니다. 그분은 ‘기르는 어업 추진계획’에 따라 동·서·남해와 제주도에 어종별로 양식어장을 확대 개발하고 품종개량, 배합사료 개발·공급, 어병(魚病) 센터 설립, 내수확대와 수출시장 개척 등으로 양식어업 기반을 확립했습니다. 동시에 해역 특성에 맞는 바다목장을 조성하여 수산자원을 획기적으로 증강하고 어장 환경을 보전·개선하는 등 21세기 한국 수산업을 기르는 어업으로 전환하는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

배 회장은 ‘수산진흥 종합대책’의 수립 시행을 통해 ‘배타적 경제수역(EEZ)’ 선포에 따른 새로운 어업질서에 맞게 연근해 어업을 개편했습니다. 또한 수산물 유통시설의 현대화, 정보화 등 유통개선과 수산물 안전시스템 확립과 어촌 종합개발, 어항시설 개선, 어촌관광 개발, 신지식 어업인 육성 등 어촌의 소득원 확충과 수산인력 양성에 주력했습니다. 한편 강력한 구조조정과 과감한 조직개편, 부실조합 통폐합과 법인어촌계 정비 등을 골자로 1999년 12월 수협법을 개정하여 개혁의 추진기반을 마련하였습니다. 또한 그분은 변화된 수산여건에 맞게 1995년과 1999년 ‘수산업법’의 두 차례 대폭 개정과 1999년 ‘어장관리법’ 제정 및 ‘내수면 어업개발 촉진법’ 개정 등 수산법제의 현실화에 주도적 역할을 했습니다. 동시에 1999년 9월 7일 공포된 ‘어업협정 체결에 따른 어업인 등의 지원 및 수산업 발전 특별법’에 의거하여 3조원 규모의 수산발전기금을 설치, 수산진흥을 위한 안정적 투자재원 확보에도 앞장섰습니다.

배 회장이 1999년에 해양수산부 차관보로 발탁된 것은 당시 교착상태에 있었던 일본, 중국, 러시아와 어업협상의 수석대표를 맡을 최적임자로 판단되었기 때문이라고 정상천 전 해양수산부장관이 증언한 바 있습니다. 배 회장은 그 협상에 목숨까지 걸었던 분입니다. 그분은 발령을 받자마자 협상에서 하나라도 더 얻어내기 위해 담당 직원들과 함께 밤샘작업에 들어갔습니다. 1999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한·러 어업회담에서 연일 계속된 회의서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자 회담기간을 연장하여 수석대표 간에 담판을 벌였습니다. 배 회장은 회의장, 만찬장이 따로 없이 밤샘을 하며 협상에 임했으나 막바지에 우리의 요구조건이 수용되지 않자 이즈마일로프 러시아 수석대표와 12월 4일 밤 안동소주와 보드카 4병을 비우고서야 5일 새벽에 극적으로 타결하였다고 합니다. 평소 건강이 좋지 못했던 그분은 과로와 원치 않은 독주 폭음으로 건강을 해쳐 6일 아침 장관에게 회담 결과를 보고한 뒤 사무실에서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 그러나 병원에 입원해서도 업무를 놓을 수 없는 상황이라 입원 중에도 수시로 병원에서 무단으로 ‘탈출’하여 러시아 대표와 협정의 합의문 안을 수정한 끝에 직원을 러시아에 보내 최종합의문에 서명을 받아오게 하였습니다.

겨우 몸을 추슬러 퇴원한 배 회장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한·일 어업협상이었습니다. 그분은 아픈 몸을 이끌고 일본으로 날아갔습니다. 그해 12월 20일부터 23일 새벽 3시까지 꼬박 60시간을 협상에 임하면서 어떻게든 타결을 짓고 말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매달린 결과 수산업계와 어민은 물론 김종필 총리와 김영진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장도 성공적인 협상이라고 찬사를 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해를 넘겨서도 배 회장은 숨 돌릴 틈 없이 한·중 어업회담, 어선 감척, 한·일 각료회담, 대일 김 수출회담 등 각종 회담에 참석하였고 아픈 몸을 치료받고 쉴 시간이 없이 격무에 시달리다가 결국 간성 혼수로 다시 쓰러졌습니다. 간이 녹아 없어져 거의 회복될 가망이 없다는 판정을 받고서도 그분은 업무를 걱정하다가 오랫동안 공적인 자리를 비워둘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2000년 5월 병가 대신 사표를 제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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