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허울뿐인 경제사업
(중) 경제사업 활성화, 왜 더딘가
(하) 어떻게 추진해야 하는가

과거 수협의 경제사업은 조합원들을 위해 위판사업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 역할을 다해왔다. 이는 단순히 위판이나 공판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조합원을 비롯한 어업인들의 소득을 일반 시장 판매보다 높게 보장해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통시스템이 다변화되는 과정에서 산지가격과 소비지가격 차이는 심해졌다. 산지에서 불과 몇 천원에 거래되는 수산물이 소비지에서는 몇 배로 불어나는 경우는 예사가 됐다. 이 같은 가격 차에 대한 정보가 지금은 실시간으로 산지에 전해진다. 산지 어업인은 본인이 위판한 수산물의 소비지가격을 즉각적으로 확인하고 비교할 수 있게 됐다.

소비지가격과 비교해 더 높은 가격을 보장받고 싶은 생산자의 바람과 욕구는 당연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조합원을 비롯한 어업인들의 높아진 요구수준에 수협이 못 미치고 있는 게 현실이다.

# 수협 유통구조개선 시기 놓쳐

이 같은 유통구조 변화에 따라 농업계는 2000년대 들어 농협을 중심으로 산지유통활성화를 시작했다. 유통비용과 마진을 줄여 보다 높은 조합원 소득을 담보하기 위함이었다. 이를 위해 선별장, 저장고 기능이 있는 산지유통센터(APC)를 구축하고 연합마케팅에 나섰다. 품질관리사와 같은 인력을 육성하는 등 우수한 품질의 농산물이 유통될 수 있는 기반도 마련했다.

뿐만 아니라 농가를 조직화해 직거래를 위한 인적자원을 확충하고, 유통활성화자금이나 채소수급안정화기금 등을 정책자금과 농협자체자금으로 지원하는 등 선도금제를 통한 농가 참여도 적극적으로 유도했다.

농협의 이 같은 유통활성화는 중앙회와 조합이 농산물 유통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거래비와 마진을 줄이는 대신 유통마진에 포함된 리스크(risk)에 대한 기회비용을 분담해 조합원을 지원하는 구조를 지녔다.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지원하겠다는 의지도 덧붙여졌다.

농협이 경제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이 같은 노력을 기울일 당시는 수협에 공적자금이 투입되던 시기이다. 농협이 이처럼 유통구조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동안에 수협은 신경분리를 단행하고 공적자금 상환을 위한 구조조정과 경영개선에만 매진해야 했다.

# 리스크 더 크지만 역량은 부족

수산물의 경우 농산물보다 유통과정에서의 리스크는 더 크다. 활어와 같은 생물을 취급하는 까닭에 선도유지가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수협은 이 리스크를 분담해 수용할 수 있는 자본이나 역량이 부족하다. 투입된 공적자금은 물론 미처리결손금도 아직 3000억원 가량이나 남아 있는 상태다. 신경분리로 신용사업의 수익을 경제사업에 지원할 수도 없다. “아직은 어렵다”는 회원조합의 볼멘소리도 계속되고 있다.

시설이나 기반도 열악하고 인적자원도 부족하다. 산지 위·공판장 시설은 노후가 심각하며 선별장과 분리도 되지 못한 곳이 많다. 심지어 제대로 된 창고시설이나 위생시설은 고사하고 비가림막이나 차양막조차 설치가 안 된 곳도 상당수다. 지붕이 없는 곳도 전체 위판장의 22%가 넘는다.

개소 당 30억원이 지원된 바다마트는 입지, 여건, 경제성 등이 고려되지 못한 채 주먹구구식으로 그 수만 늘린 결과 현재 18개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농협에서 산지유통을 활성화시켜온 10년여의 시간을 수협은 갖지 못해 노하우도 부족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영어조합법인이 그 자리를 대신하며 영향력을 키웠다. 영어조합법인은 마케팅 역량을 키워 유통구조에 뛰어들면서 일선 수협조합과의 경쟁에서 점점 우위를 점하기 시작하고 있다. 실제로 수협과의 가격차이가 커져 수협보다는 영어조합법인이나 직거래를 통한 산지거래가 늘고 있는 추세다.

따라서 초기 농협이 산지유통을 활성화시킬 당시는 산지가격보다 높은 가격만을 보장하면 됐지만 지금의 수협은 영어조합법인들보다 높은 가격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부담이 더해졌다.

# 추진 의지도 낮아

이처럼 시설, 제도 등 구조적인 취약성도 문제지만 관계자들의 도덕적 해이와 의지부족이 수협 경제사업 활성화를 저해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와 관련 중매인들과 결탁해 부정을 저지르거나 경제사업을 위한 적극적인 투자나 인프라 확충에 소극적인 조합이 많다는 지적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특히 선거제를 통해 선출되는 조합장이 단기적으로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는 시설투자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 이는 많지 않다. 장기적인 계획으로 유통구조를 개선한다곤 하지만 자신의 임기가 끝난 이후에 결실을 맺는다면 큰 유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중앙회나 정부가 적극적으로 제도적 지원을 하는 한편 교육을 통한 인식변화를 유도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김기태 (사)한국협동조합연구소 소장은 “수협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한 경제사업 활성화는 농협보다 큰 위험부담을 안고 있지만 이를 수용하기엔 구조와 주체의 행위 측면에서 부족함이 있다”며 “이를 보완해 경제사업을 적극적으로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인식전환이 최우선 과제이며 위험부담을 중앙회와 조합이 분산해서 수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는 게 필요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김 소장은 “특히 지역별로 다양한 수산물을 취급하고 있는 수협의 경우 회원조합이 사업연합 형태로 연계해 이를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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