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업+체험관광 성공적 결합…年 15만명 ''발걸음''
국도를 벗어나 구불구불한 농로를 한참 따라 들어가다 보면 백미리 어촌마을의 상징인 ‘망이’와 ‘둥이’가 보인다.
백미리마을이 있는 경기 화성시의 특산어종을 형상화한 캐릭터 ‘망이’와 ‘둥이’는 백미리마을이 체험마을로 성공적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을 한눈에 보여주는 듯했다.
연간 15만여명이 찾는 것으로 추산되고 그중 90%에 달하는 12만5000여명이 갯벌체험을 하는 작은 어촌마을. 1차 산업인 어업과 3차 산업인 관광을 성공적으로 결합시킨 백미리 마을은 어촌을 떠났던 사람들이 돌아오면서 2차 산업인 김 가공산업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바다가로 진입할 수 있는 모든 길은 철조망으로 가로막힌 데다 갯벌체험을 할 수 있는 갯벌입구 인근에는 식사를 할 수 있는 곳도 식당 2군데뿐인 백미리마을이 어떻게 어촌체험관광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백미리마을에서 엿볼 수 있었던 창조경제의 단면을 들여다본다.
# 시골은 시골다워야
어촌체험관광으로 유명세를 타기 전 백미리 마을은 주민들의 평균연령이 70세 가량되는 전형적인 어촌마을이었다.
백미리마을은 1999년 인근의 청소년 수련장 씨랜드에서 일어난 참사로 많은 국민들의 아픔이 남아있는데다 눈에 띄는 볼거리, 즐길거리도 없어 관광지로 적합하지 않은 곳이었다.
이같은 백미리 마을이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김호연 어촌계장이 취임한 이후 마을의 수익원을 찾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어촌계장으로 취임하면서 마을 사람들이 수익을 낼만한 걸 찾다가 체험마을을 시작하게 됐죠. 처음에는 주민들이 ‘대체 어느 누가 이런 시골마을에 오겠냐’며 매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판매’보다 ‘체험’에 중점을 두고 체험마을 사업을 하다보니 이제 전국적인 인기를 끄는 체험마을이 됐죠.”
김 계장이 말하는 체험마을의 기본은 ‘시골은 시골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백미리마을은 최근 마을로 진입하는 좁고 굽어있는 농로를 2차선으로 바꿔주겠다는 경기도의 제안도 마다했다.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생업의 현장이지만 도시민들에게는 ‘휴식’이라는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공간이 어촌”이라며 “백미리를 찾는 많은 사람들에겐 백미리로 들어오는 그 길조차 하나의 체험이 되는데다 좁은 길이지만 물때에 맞춰 차들이 오가기에 큰 불편함도 없어 길을 넓힐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 자갈하나, 풀 한포기가 마을의 가치가 될 수 있어
백미리마을의 성공의 근간에는 마을을 사랑하는 계원들의 마음이 있다.
도시민들에게 어촌마을을 알리려다보면 마을을 그 누구보다 잘 알아야하고 이것이 곧 마을의 가치에 대한 재발견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백미리 마을의 체험마을사업 사무장은 마을 뒷산을 걸을때 느껴지는 호젓함과 길을 가다 보이는 자갈하나, 풀 한포기 하나하나를 관광자원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창미 백미리 어촌체험마을 사무장은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제주 올레길도 그저 풀이 제멋대로 자란 시골길에 불과할 수 있다”며 “아침저녁으로 마을부터 뒷산까지 한 바퀴 돌면서 산책하기 좋은 코스를 생각해보고 마을을 찾는 사람들에게 이를 알려나간다면 우리 마을의 뒷산도 올레길처럼 마을을 재발견하고 가치를 창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백미리마을은 단순히 자연경관 뿐만 아니라 마을관광의 장애요소로 작용하던 해안가의 철책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김 계장은 “체험마을을 시작할 당시 마을을 둘러싼 철책이 바다로의 접근성을 떨어뜨려 없애야한다는 말이 많았는데 지금은 철책덕분에 체험자들의 출입통제가 가능해 없으면 안될 존재가 됐다”며 “마을을 둘러싼 철책에 소원을 적은 자물쇠를 하나씩 거는 것을 또 하나의 상품으로 만들어 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없는 것을 무리해서 새로 만들려 하는 것보다 기존에 있는 자원을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콘텐츠 개발, 새로운 가치의 창조
백미리마을이 반짝 뜨는 체험마을에 그치지 않고 10년 가까이 지속되는건 바로 지속적인 콘텐츠의 개발에 있다.
이는 초기에 실시하던 갯벌체험만으로는 소비자들의 다양한 요구에 부합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현재 백미리마을은 대표적인 갯벌체험 뿐만 아니라 카누카약체험, 낚시, 갯벌마차, 무인도 체험, 캠핑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형태의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집객을 위해 다양한 연령층을 소화할 수 있는 여러 체험프로그램을 만들고 이를 통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백미리 체험마을 사업에서 주가 되는 것은 갯벌체험이고 다른 체험들은 가급적 마을에서 직접 운영에 나서지 않는다. 전문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업체가 뛰어들어야 제대로 된 체험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김 계장은 “최근 체험마을에 대한 정부지원이 많아지고 있는데 정부지원금을 판매시설을 짓거나 사업성평가도 제대로 되지 않은 체험사업을 하는데 써선 안된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가능하고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한 여러 콘텐츠 도입을 시도하되 마을에서 직접나서서 하기 보다는 진입을 희망하는 이들에게 길을 열어줘 그들을 통해 마을의 새로운 가치를 찾아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미니인터뷰 - 김호연 백미리마을 어촌계장]
“유럽의 바닷가에는 식당보다는 공원이 많은데 비해 우리나라의 바닷가는 전부 횟집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바다를 찾는 사람들이 그저 바다를 바라보며 회를 먹기 위해 찾는 게 아닐텐데 그런 모습을 보면 조금 안타깝습니다.”
김호연 백미리마을 어촌계장은 바닷가가 ‘휴식’을 위한 공간이 되지 못하고 ‘상업’을 위한 공간이 되고 있는 게 안타깝다고 지적한다.
누구나 가벼운 마음으로 바다를 찾을 수 있게 된다면 보다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텐데 근시안적인 관점에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 계장은 “어촌은 한 세대만 더 지나도 마을이 텅 비게 될 것을 걱정해야 할만큼 심각한 상황에 봉착해 있다”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젊은 사람들이 마을로 돌아올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고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백미리마을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주는 덕분에 농수산물 가격은 인근 지역에 비해 훨씬 높게 형성되는 등 마을 경제가 살아나고 이에 따라 사람들이 마을로 돌아오고 있다”며 “농어촌이 가지고 있는 가치와 특징들을 잘 살리는 것만으로도 농어촌 마을이 살아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백미리마을, 어떻게 달라졌나]
백미리마을이 체험관광을 시작하며 눈에 띄게 달라진 건 주민들의 평균연령이 크게 낮아진 것이다.
체험마을을 시작하기 전 평균연령 70대인 55명의 계원으로 구성됐던 어촌계는 9년 만에 평균연령 50대에 124명의 계원이 있는 대규모 어촌계가 됐다. 신규 계원이 크게 늘어나자 마을에서 거의 포기하다시피했던 김 양식어가가 하나 둘씩 늘어나고 있다. 백미리마을에서 생산된 김은 인근 제부도의 브랜드를 함께 쓰고 있으며 친환경 김양식은 점차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다른 변화는 바지락, 낙지, 포도 등 지역 농수산물 가격 상승으로 마을사람들의 생업이 안정된 것을 들 수 있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면서 자연스레 백미리마을 인근의 수산물 가격이 높아졌고 포도 등 지역 농산물도 판매가 잘 돼 마을 경제가 활성화되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를 보인건 바로 마을 내의 파벌싸움이 없어지고 마을 사람들간의 협력이 잘되고 있는 것이다. 예전엔 소득문제를 놓고 주민들 간 다툼이 종종 있었는데 체험마을을 운영하며 힘을 모으다보니 서로 돕게 됐고 하나로 뭉치게 됐다는 것이다.
인근의 부유했던 어촌계들이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것과 반대로 과거에 작고 힘없던 백미리 어촌계는 기존에 마을이 가진 가치를 ‘체험마을’을 통해 재발견하면서 본격적인 호황을 누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