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문화는 살아 있는 생물과 같아서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또 소멸된다. 그리고 지역별, 국가별로 각각의 토양과 기후조건에 맞춰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한편, 이러한 음식문화는 전쟁이나 무역을 통해서 다른 나라와 부단히 교류하고, 때로는 우연한 과학적 발견이나 인간의 의도적 노력에 의해 바뀌기도 한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유음식 중에서 김치와 불고기를 잠깐 살펴보자. 김치의 주재료인 고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역사는 생각보다 길지 않다. 중남미지역이 원산지인 고추는 대체로 임진왜란 이후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매운 맛의 고추는 처음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1614년 이수광이 지은 ‘지봉유설’에 고추에 관한 기록이 나오는데, 그는 고추의 맛이 맵고 독하여 많이 먹는 사람은 죽는다고 했을 정도이다. 지금 우리가 먹는 고춧가루로 버무린 김치는 대체로 1800년대에 들어서서 나타나게 되는데, 이런 김치가 이제는 한국인의 필수 식품이 되고 말았으니 고추의 위력이 정말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불고기가 우리의 대표식품이 된 것은 또 어떤 연유에서였을까? 우리나라에서 소는 논을 갈고 짐을 운반해야 하는 역우(役牛)로 이용됐기 때문에 우리조상들은 쇠고기를 먹어 볼 일이 많지 않았을 것이다. 돼지 등 다른 가축의 사육도 활발하지 않았던 편이다. 그런데 이런 조건에서 불고기가 우리의 전통식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한마디로 고구려의 유산을 잘 보전해 왔기 때문이다. 고구려인들은 북방유목민으로서 쇠고기나 돼지고기 등을 된장에 재웠다가 다진 마늘, 파 등을 발라 구워먹었다고 하는데(맥적) 이것이 바로 불고기의 원형이다. 고려시대에는 꼬치에 꿴 고기에 소금을 뿌리고 참기름을 발라 구워먹었고(설야적), 조선시대에 들어오면 오늘날 불고기의 원조가 되는 ‘너비아니’가 궁중을 중심으로 발전하게 된다.
외국의 사례를 살펴봐도 음식문화는 주변 지역과의 부단한 교류를 통해 만들어지고 번성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프랑스가 세계음식문화를 선도하는 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탈리아에서 다양한 음식문화를 받아들인 덕분이다. 피렌체의 메디치가문은 1533년 카테리나 데 메디치를 프랑스의 왕 앙리2세와 결혼시키는데, 이 때 이탈리아에서 수많은 식재료와 조리법, 식탁예절 등이 함께 프랑스로 건너갔던 것이다. 당시 이탈리아는 유럽과 아시아간 무역의 중개기지로서 음식문화가 크게 발달해 있던 곳이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음식문화는 또 다른 요인에 의해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예컨대,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여성들이 집을 나와 직장을 갖게 된 사실은 음식문화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또 아메리카 대륙에서 생산된 쇠고기를 유럽에 수출하기 위해 처음 개발된 냉동기계가 식품가공 및 보관에 광범위하게 사용되면서 소위 공장형 식품이 대량으로 생산되어 소비자에게 공급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요인들은 24시간을 쪼개가면서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패스트푸드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패스트푸드를 통해 과다한 열량이 공급되면서 비만 등 성인병 문제가 심각해지자 한편에서는 유기농 식재료 등을 가정에서 정성껏 조리해 먹는 소위 슬로푸드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처럼 음식문화는 끊임없이 변한다. 과거의 역사를 잘 보존하되, 시대에 맞는 음식문화를 찾아내고 이를 더욱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중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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