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1856~1950)의 묘비에는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글이 쓰여 있다고 한다(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우리말로 번역된 표현이 그의 의도를 정확히 나타낸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세상 살면서 과감하게 행동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 보면 좋은 기회를 놓치거나 심각한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참 많다.
우물쭈물하다 우리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례를 보자. 쌀은 한때 조기관세화를 검토했었지만 찬반 의견이 엇갈려 시간만 낭비하다 결과적으로 의무수입량만 늘려준 셈이 되었다. 쌀 생산조정도 잠시 시행하다 중단하는 바람에 지금은 감당하기 어려운 재고가 쌓이게 되었다. 가축질병 구제역은 벌써 여러 차례 경험했지만 우리의 대비 태세가 아직도 불안해 계속해서 백신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난감한 처지에 빠져있다. 농산물 수급불안이 해마다 반복되는 데도 정부 책임이냐, 생산자 책임이냐를 따지면서 세월이 가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가 과감히 행동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지내온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지금 한국농업은 정말로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 당장의 현실도 답답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시원스러운 돌파구가 있을 것 같지 않아 더욱 안타깝다. 이 난국을 어떻게 돌파해야 할까? 더 이상 우물쭈물하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과감히 행동해야 한다.
예컨대, 쌀은 우리 국민이 먹을 만큼 생산해야 한다. 생산조정은 필수이다. 해마다 풍흉에 따라 수급정책을 바꾸면 과잉생산에 따른 쌀값 하락의 악순환을 막을 길이 없다. 그리고 품질은 수입쌀을 압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해마다 볏짚을 논에서 빼가면서 고품질 쌀을 만들겠다면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생산조정과 볏짚 돌려주기를 당장 실천해야 한다.
농식품 수출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제는 선택과목이 아니라 필수과목이다. 국내시장에 팔다 남으면 수출하고 부족하면 중단하는 그런 수출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처음부터 해외시장에서 팔릴 수 있는 상품을 골라서 전략적으로 생산해야 한다. 쌀을 심던 논에 수출용 농산물을 적극 심어야 한다. 서해안의 넓은 간척지도 수출농업의 적지이다. 수출농업은 한국농업의 희망이기도 하지만,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는 국가적으로 정말 중요한 산업이 아닐 수 없다.
농산물 수급안정 대책도 발상의 전환을 가져와야 한다. 수십 년간 농업관측, 계약재배, 산지폐기 등 온갖 노력을 해보았지만 그 성과는 신통치 않다. 상품의 주인인 농업인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농업인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여럿이 뭉치면 분명히 길이 있는데 행동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제는 생산자가 나서야 한다. 가령 농업인이 배추를 심었다면 그 재배면적과 작황을 인근 농협에 알려주는 일부터 먼저 시작하면 좋을 일이다.
한국은 사계절 뚜렷하고 물이 깨끗해, 땅을 비옥하게 하고 종자를 잘 개량하면 세계에서 손꼽히는 고품질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는 곳이다. 여기에다 능력 있는 농업인이 있고, 밤낮을 가리지 않은 채 열심히 일하는 농업공직자 등 후원세력이 있으니 무엇을 주저할 것인가? 당장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두고두고 풍성한 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한국농업을 만드는데 우리의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 지금은 더 이상 우물쭈물할 때가 아니다.
박현출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