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과 농촌은 무엇이고,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그리고 농민은 누구인가? 누가 뭐라고 하던지 농업과 농촌은 농민의 일터이고 삶터이고, 도시민에게는 쉼터이다. 농민은 생명산업인 농업을 지키고, 농촌을 가꾸는 주역이다.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농업·농촌을 대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런 말들은 메아리 없는 공허한 소리로 들릴 뿐이다. 농업과 농촌을 지키는 사람들만의 자기만족이라고 할까? 아니면 농민들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을 때가 많다. 농자천하지대본은 박물관에나 가야 찾아볼 수 있는 옛말이 된 느낌이다.
  산업화시대를 거치면서 농업·농촌의 중요성은 퇴색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5년 WTO(세계무역기구)체제 출범, 뒤이은 무차별적인 FTA(자유무역협정)시대를 맞아 농업·농촌은 오히려 걸림돌로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농민을 정부 보조금이나 탐내는 그런 부류로 인식할 정도로 위상과 권위가 추락했다. 사실이 호도돼도 너무 호도됐다.
  나라 전체를 떡 주무르듯 하는 정치권 역시 농민을 대하는 인식이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변했다. 농민들은 그동안 정치권에 한 가닥 희망을 걸어왔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여야가 없다고 할 만큼 농업과 농촌에 온갖 애정을 쏟아왔다. 하지만 총선을 코앞에 둔 지금 정치권에서 전해오는 얘기를 듣자면 농업?농촌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기존 선거구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판결 이후 정치권 이곳저곳에서 농업·농촌을 배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우후죽순 식으로 터져 나오기도 했지만,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격이 되는 분위기다. 여야는 지난달 24일 4·13총선 지역구를 현행 246개보다 7개를 늘리는 대신 비례대표를 7석 줄이기로 잠정합의했다. 이 잠정합의에 따르면 경기지역에서 가장 많은 8석, 서울·인천에서도 1석씩 각각 늘어나는 반면 영·호남에서 각각 2석씩 줄어들 것이라는 시뮬레이션의 결과다. 그동안 이러쿵저러쿵했지만 결국은 농업·농촌을 근거로 하는 지역구 의석수가 줄어든다는 점이다.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라는데 있다. 농업·농촌 관련 지역구가 축소되면 농업계 대표가 비례대표를 통해 국회에 많이 진출, 농업·농촌·농민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비례대표 의석이 7석 줄어들면 비례대표 당선권 순위에 이름을 올리는 게 종전보다 훨씬 더 어려워진다. 벌써 정치권 일각에서는 농업계에 내줄 당선권 순번이 없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에 있어서 정치권의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여야 정당은 정치활동을 통해, 국회는 입법권과 행정부감시견제권을 통해 나라 일 전체를 쥐락펴락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행사한다. 이런 국회에 농업?농촌?농민을 대변할 국회의원이 줄어든다는 점은 생명산업인 농업과 일터이자 삶터이고 쉼터인 농업·농촌의 미래가 어둡게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예고한다. 정치권은 농업·농촌·농민이 갖는 의미와 중요성을 말로만 강조해서는 안 된다. 여야는 4·13총선에서 농업·농촌·농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실천을 통해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 그 첫 단추는 바로 비례대표 당선권에 농업계대표를 공천하는 일에서 시작돼야 한다.
  농업계도 감이 입으로 떨어지기만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 4·13총선 때 농업계의 입장을 반영하는 힘은 표에서 나오고, 한 곳으로 모일 때 강해진다. 4·13 20대 총선에서는 19대 총선 때와 같은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힘을 한마음 한곳으로 모아 반듯이 농업계대표를 비례대표 의원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농업·농촌·농민이 사는 길은 힘을 모으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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