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 세트’! 소위 김영란법이 합헌판결을 받으면서 유통·요식업계에 새롭게 등장한 문화(?)의 한 단면이다. 문화라는 표현을 쓰니 김영란 세트를 좋게 평가하고 환영하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문화 가운데는 좋은 것도 있지만 퇴폐문화처럼 추방시켜야할 것도 많이 있다.
  이달 초 대전의 한 음식점에 ‘김영란 세트’가 등장했다고 한다. 한 식당에서 미국산 소갈비살에 소주, 맥주, 식사를 포함해 2만9900원짜리 메뉴를 개발해 손님맞이에 나섰다. 얼핏 세트메뉴를 보면 갖출 것은 다 갖춰 소비자를 만족시킬 듯하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국산 쇠고기 홍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한우고기는 뒷전으로 밀렸다. 한우고기 만이 아니다. 김영란법을 기회로 삼아 수입 삼결살 메뉴도 싼 가격을 앞세우며 기세등등하게 소비자를 공략하고 있다. 여기에 김영란법의 아픔이 있다.
  소위 김영란법은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말한다. 다음달 28일이 시행일이다. 이 법에 대한 반대가 많았고, 위헌신청까지 간 끝에 합헌판결이 나오자 곧바로 국회에서 법 개정 얘기가 나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대한민국을 깨끗한 사회로 만들자는데 대해 반대할 사람은 없다. 김영란법 취지는 여기에 있다. 부정청탁이나 금품수수 등을 막아 대한민국을 깨끗한 사회로 만들자는 게 김영란법이다. 이렇게 좋은 취지의 법이 제정되었고, 시행일이 목전인데 엉뚱하게도 농축수산업계가 이미 된서리를 맞고 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반대로 수입 농축수산물은 물 만난 고기처럼 호기를 맞았다.
  김영란법 피해자가 된 농업인들은 아무런 죄가 없다. 굳이 죄라면 생업에 충실해 온 죄밖에 없다. 그런데 부정청탁 금지의 최대 피해자가 됐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세례를 받았고, 맑은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꼴이 됐다. 아직 김영란법이 시행되지도 않았는데 농축수산물 소비 위축이 현실화됐다. 미국산 소갈비살에 소주와 맥주, 식사까지 포함하는 김영란 세트는 빙산의 일각과 같다. 고급 관광호텔도 김영란 세트를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유통업체는 김영란법을 피해나가기 위해 다가오는 추석 선물세트로 4만9900원짜리를 속속 내놓고 있다. 참으로 교묘한 김영란법 빠져 나가기다. 농축수산물 김영란 세트는 가격이 떨어진 만큼 크기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김영란법 피해자는 농업인만이 아니다. 김영란 세트를 내놓고 있는 유통업체도, 요식업체도 마찬가지로 피해자이다.
  농업인들은 완전히 동네북 신세다. WTO체제 출범으로 농축수산물시장이 개방돼 수입농축수산물에 시장을 빼앗기기 시작했고, 뒤이어 도래한 전방위적인 FTA로 농업인들은 속수무책으로 농축산물시장을 빼앗기면서도 바라만 보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이런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김영란법이 농업인들의 목을 옥죄기 시작했다.
  김영란법이 제로섬 게임으로 가서는 안 된다. 상거래는 한쪽이 이익을 보면 다른 쪽은 손해를 볼 수 있다. 하지만 부정청탁이 없는 깨끗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은 상거래와 다르다. 부정청탁과 금품수수가 없는 깨끗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모두가 웃을 수 있게 하자는 게 김영란법의 취지다. 왜 농업인들이 김영란법으로 등이 터져야 하는가? 아무런 죄도 없이 피해를 보는 쪽이 생긴다면 김영란법은 취지가 아무리 좋더라도 어딘가에 문제가 있는 법이다. 부정청탁 없는 깨끗한 대한민국을 만들고 농업인도, 요식업계와 유통업계 종사자도, 국민 모두가 웃을 수 있는 김영란법을 만드는 것은 신만의 영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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