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꽃을 든 남자 눈길 가두는 ‘F4’ ③ <생산> 오진석 화훼농창업인

또 다른 청년농업인 길러내는게 목표
"나를 잘 이해해주는 멘토 만나 화훼 길 걷게 되었죠"
이예람 기자l승인2017.08.11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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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싣는 순서]
1. <화원> 김한별 비올즈 플라워카페 대표
2. <유통> 안병덕 꽃청춘 대표
3. <생산> 오진석 화훼농창업인
4. <가공> 이인표 꽃을담다 대표

청탁금지법 및 수요 감소 등의 영향으로 화훼시장이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는 가운데 꽃이 주는 행복을 찾아 화훼농창업을 결심한 청년이 있다. 바로 경북 왜관에서 올해로 창업 2년차를 맞은 오진석 화훼농창업인(29)이다.

그는 올해로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은 것은 2년 밖에 안됐다. 하지만 농창업을 하기 전 좋은 멘토를 만나 3년간 화훼농사를 짓는 실습형 교육을 받고 이제는 어엿이 대국, 소국, 리시안셔스, 튤립 등을 4작기로 재배, 출하하고 있는 프로농업인이다.

오 씨는 농고를 졸업한 후 경북대 원예학과에 진학했지만 ‘농학’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이 때문에 군복무 후 공부가 너무 하기 싫어 퇴학신청서를 작성해 담당 교수의 연구실을 찾아갔다.

그의 담당 교수는 당장 할 것을 정하지 못했다면 돈이라도 벌 겸 농가 실습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정부에서 지원 중인 농대생 대상 영농정착교육과정을 받아보라는 것이었다.

당시 마음이 답답했던 그는 차비 정도의 지원비를 받아들고 구근류 화훼를 재배하는 경북 칠곡소재 햇빛농원으로 가게 됐고, 그곳에서 진정한 멘토를 만나 화훼농업인으로서의 미래를 꿈꾸게 됐다.

오 씨는 “농사를 떠나 김성수 햇빛농원 대표님이라는 사람 자체가 무척 좋았다”며 “항상 나를 잘 이해해 준다는 느낌을 강렬하게 받았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1년의 영농정착교육과정이 끝난 후에도 계속해서 자발적으로 햇빛농원을 찾았다. 이렇게 2년이 지나고 오 씨는 어느새 대학 졸업을 앞두게 됐다. 오 씨는 “졸업이 얼마 안 남은 시점, 아무리 공부를 안 했어도 농고·농대를 나왔으니 농업을 어깨너머로 본 게 벌써 7년차임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때 내가 지금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농사’가 아닐까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김 대표는 대학을 갓 졸업한 오 씨를 농사꾼으로 만드는 작업에 돌입했다. 오 씨는 졸업을 하자마자 왜관에 방을 얻어 김 대표의 비닐하우스 1650㎡(500평)에서 대국 농사를 지었다. 그는 “이전에 칠곡에서 일을 도와드릴 때는 공휴일에 다 쉬었는데 한 달에 1번만 쉬라는 엄명을 받았다가 몇 번의 협상 끝에 한 달 중 2일의 휴가를 쟁취해냈다”며 미소를 지었다.

▲ 오진석 화훼농창업인은 멘토 김성수 햇빛농원 대표의 지도를 통해 꽃이 주는 즐거움 알게 됐다. 현재 경북 왜관에서 대국, 소국, 리시안셔스, 튤립 등을 재배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화훼 육묘부터 구근 관리, 지력 유지, 화훼 관리 등 꽃 농사를 체계적으로 배웠다. 김 대표는 매일 해야 하는 일을 알려주며 오 씨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오 씨는 “지금 그때 꽃 사진을 보면 정말 형편없는 물건인데 그때 김 대표님께서 항상 칭찬해주셔서 진짜 화훼농업이 내 천직인 줄로만 알았다”며 웃었다. 그리고 반년 뒤 김 대표는 같은 마을에서 빈 하우스를 찾아 오 씨에게 1320㎡(400평), 2동의 비닐하우스를 임대해 줬다.

자신감이 붙은 오 씨는 가을에는 소국을, 겨울에는 튤립을 재배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높은 수익을 내지 못했지만 기준단가를 알지 못해 매출에 대한 걱정보다는 좋은 꽃을 생산하는데 온 신경을 쏟았다고 설명했다. 매출 중 순이익은 50%이지만 2970㎡(900평)을 3작기 이상 재배하면 그럭저럭 벌면서 여유롭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오 씨는 김 대표를 만난지 4년 만에 안정적인 홀로서기를 시작하게 됐다. 오 씨는 “항상 화훼농가 어르신들이 3년 안에 실수를 한 번이라도 하면 안된다”며 “예를 들어 튤립은 25℃가 넘어가면 꽃이 죽는데 한 작기에 사용하는 모종 값이 1400만원이기에 품질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런 일이 겹치면 빚을 지기 쉽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좋은 멘토가 있었기에 그러한 상황들은 모두 피해나갈 수 있었다. 오 씨는 “꽃은 거치고 무뎠던 나 조차도 온화하게 품었던 작물”이라며 “내가 재배한 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생각을 하면서 꽃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앞으로 내가 김 대표님의 나이가 되면 받은 만큼 돌려줄 수 있도록 또 다른 청년 화훼농업인을 키워내는 것이 목표”라며 환하게 웃었다.


이예람 기자  leeyr@afl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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