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신문=최기수 발행인] 

“농정 패러다임을 전환하라.”

이 소리를 귀가 따갑도록 듣기 시작한 게 10년은 더 됐다. 농정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하는 근거로 지속가능한 농업이 제시됐다. 농업은 지속가능성을 추구해야 하는데 그동안 추진해온 규모화 농정, 경쟁력 강화 농정으로는 어렵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최근 ‘지속가능한 농업’에 ‘농민 행복’이라는 새로운 화두가 더해졌다.
 

10년을 넘게 허공에서 맴돌던 농정 패러다임 전환이 문재인 정부에서 시작됐다. 변화 중 변화이다. 문재인 정부는 농정 화두로 ‘사람이 중심이 되는 농정개혁’을 제시했다. 농업을 기존 경제적 가치 중심에서 공익적 가치로 확장하고, 농업인은 농산물 공급자에서 좋은 식품을 만들고 환경을 지키는 주체로 개념을 전환했다. 이를 위한 정책 추진도 기존의 농업인프라 구축과 쌀 중심에서 청년과 혁신농 등 사람 중심 농업 육성으로 방향 전환을 했다.
 

이 정도면 규모화와 맞춤형 농정을 통한 농업경쟁력 강화라는 기존 농정 틀이 파기(?)됐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듯 하다. 특히 주목할 점은 농업인 역할을 좋은 식품을 생산하고, 환경을 지키고 보전하는 환경지킴이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농업은 농업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함께 환경을 보전하고 지켜나가는데 방점이 있다.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문제는 실행이다. 그 실행은 새로운 농정 패러다임이 신속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추동력을 불어넣는데 있다. 농정은 제도와 예산에서 나온다. 농정 패러다임을 시대적 변화에 맞춰 전환하고, 좋은 정책을 많이 만들더라도 법적인 제도와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용두사미로 전락하고 만다. 농업의 공익적 가치는 엄청난 예산이 수반되는 공익형 직불금제가 핵심이다. 예산 당국과 합의가 안 되면 제도 자체의 도입마저 불가능하다.
 

농정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서는 국회의 적극적인 협력이 절실하다. 법을 만드는 곳은 국회다. 국회가 뒷짐을 지고 있으면 농정 패러다임 전환은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예산의 시작은 담당 공무원들의 적극성과 사고에서 시작된다. 담당 공무원의 사고가 바뀌지 않으면 습관화된 기존 틀에서 예산편성 작업을 시작한다. 사업별로 전년대비 몇 % 증액이 가장 일반적인 사고이다. 이런 사고로는 새로운 농정패러다임을 뒷받침할 수 없다. 하지만 누구나 기존 습관에 익숙하기 때문에 ‘제로 베이스(Zero Base)’에서 예산을 편성하려고 하지 않는다.

기존 예산에서 사업별로 몇 %를 증액하거나 감액하는 예산 틀에서 벗어나 제로 베이스에서 예산편성 작업을 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예산개혁 차원에서 제시됐지만, 구두선에 그쳤다는 점이 반증이다.

새로운 농정패러다임이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예산을 뒷받침하는 일은 농림축산식품부 공무원과 기획재정부 예산담당 공무원의 역할이다.
 

농업인의 적극적인 협력과 협조도 새로운 농정패러다임을 정착시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기존에 새로운 정책이 도입되면 수혜를 받는 농업인들은 환영을 하지만, 반대로 소외되거나 혜택이 없는 농업인들은 불만을 터트리고는 했다.

국가예산만 풍족하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국민이 내는 세금은 한정돼 있고 나라 전체적으로 쓸 곳은 너무너무 많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 부문이 늘어나면 다른 부문에서 예산이 줄어들거나 동결될 수밖에 없게 된다.

농업인들은 보다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새로운 농정 패러다임 전환에 따른 예산변화를 이해하고 적극 협조해야 한다.
 

나아가서는 농업인과 농정당국 간 ‘협치 농정’이 이뤄져야 한다. 협치 농정의 도입과 정착이야말로 농정패러다임 전환의 종착역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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