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신문=최기수 발행인]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우리나라의 WTO(세계무역기구) 개발도상국 지위가 논란이 되고 있다. 진원지는 미국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6일(현지 시각) “한국 등 부자 나라들이 WTO에서 개발도상국 혜택을 못 받도록 모든 수단을 강구하라”고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지시하면서 개발도상국 지위에 비상이 걸렸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90일 내 실질적인 진전을 이뤄내지 못하면 이들 국가에 대한 개도국 대우를 일방적으로 중단하겠다”고 구체적인 일정까지 밝혔다. 

개발도상국 지위를 상실하게 되면 농업보조금을 선진국 수준으로 감축하게 돼 농업정책 수단이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된다. 
  

개발도상국 지위는 해당 국가의 ‘자기선언(self-declared) 방식’으로 결정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WTO 회원국들의 동의가 뒤따라야 한다. 우리나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이지만 1993년 12월 15일 타결된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에서 개발도상국을 선언했고, 당시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회원국들로부터 개발도상국 지위를 받았다. 그 결과 관세와 농업보조금을 선진국보다 낮은 수준에서 감축할 수 있었다. 

개발도상국에 적용되는 특별품목 우대를 통해 중요한 농산물에 대해 100%가 넘는 고율관세를 유지해왔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연 초부터 자기선언에 의한 개발도상국 지위 체계를 흔들려는 시도를 해왔다. 

미국은 지난 1월 중순 WTO에서 ‘자기선언 방식’의 개도국지위 결정이 갖는 문제점을 제기했다. 

지금까지 세계 경제발전 동향을 감안할 때 기존 선진국과 개도국이라는 이분법적 분류에 기초한 WTO 의무 이행은 현실을 적절히 반영하고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개도국 우대의 근본 취지를 손상한다는 게 미국의 주장이다. 

미국은 지난 2월 15일 WTO로의 편입 시 어려움을 겪게 될 개도국에 최대의 혜택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며, 현재 또는 미래의 WTO 협정에서 개도국 우대를 이용하지 않는 회원국 기준도 제시했다. 

미국이 제시한 4가지 기준은 △OECD 회원국이거나 가입 절차를 밟고 있는 국가 △G20 국가 △세계은행에서 고소득 국가로 분류한 나라 △세계 무역량의 0.5%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이다. 우리나라는 4가지 기준에 모두 해당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WTO에서 개발도상국 지위에 무임승차하고 있다고 중국 등 11개국을 거론한 지 1주일 만에, 싱가포르와 UAE(아랍에미리트)가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우리나라도 비상이 걸렸다. 통상 관련 주관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6일 17개 정부 부처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WTO 개발도상국 지위를 둘러싼 논란과 관련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WTO 개발도상국 지위 존속이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당장 WTO 개발도상국 지위를 상실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조심스런 전망을 해본다. 

사실상 백기투항을 한 것으로 전해지는 UAE의 대응을 보면 그렇다. 외신은 “UAE는 WTO 회원국들이 개발도상국 혜택 철회를 승인한다면 이를 거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하고 있다. WTO에서 개발도상국 지위 철회를 결정하기까지는 절대적으로 시간이 필요하다. 

다만, WTO 결정 이전까지는 미국의 압력 가중은 예상된다.
  

우리 농업이 WTO체제, FTA(자유무역협정)체제에서도 살아남은 이유는 그동안 경쟁력 강화와 차별화전략의 결과이다. 특히 차별화 전략을 통해 소비자들로부터 우리 농산물은 안전하고 품질이 좋다는 신뢰를 얻는 게 절대적인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이 이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욱 자명해 진다. 우리 농축수산물에 대한 소비자 신뢰를 더더욱 높여 소비기반을 유지하고 확대해 나가는 길이다. 생산성 역시 더더욱 높여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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