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신문=이한태 기자] 

‘호구(虎口)’는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범의 아가리를 뜻하지만 실상 ‘어수룩해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지칭할 때 많이 쓰인다. 올해 들어서는 작물보호제(농약)업계에서 자조적으로 이 같은 표현이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작물보호제업계는 높은 원제 수입의존도로 원제사의 눈치를 보고, 매해 늘고 있는 계통판매 비중으로 농협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애쓴다. 그리고 그 어느 곳보다 쩔쩔매는 곳이 농촌진흥청이다. 농진청은 작물보호제 등록부터 유통관리·감독, 처분, 제도개선 등 말그대로 농약 생산·판매 전반에 걸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농진청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개진하는 것 자체를 굉장히 부담스러워한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농진청에서는 농약 포장지 표시기준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와 관련해 2~3년마다 포장지 변경을 요구하고, 그 때마다 달라지는 일관성 없는 표시기준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특히 작물보호제시장 규모가 축소될 정도로 어려운 경영여건을 감안하면 포장지 변경으로 증가하는 비용에 대한 부담으로 ‘타격이 크다’고 전하는 제조사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진청 관계자가 “비용 얘기는 꺼내지 말라”라고 하면 이에 대해 더 이상 반론조차 힘든 게 제조사의 입장이다. 괜히 ‘찍혔다’가는 뒷감당이 어려울 거라 지레 겁먹을 수밖에 없는 구조 탓이다.
 

농약 포장지 표시기준은 현재 당초 연구용역으로 진행한 계획안 대신 제조사와의 협의를 통해 마련한 대안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농진청에서는 “충분한 의견수렴과 협의의 과정을 거쳐 제조사의 입장이 충실히 반영됐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제조사들은 “추가 비용이 10억원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다가 3억~4억원이 들어가게 되면 부담이 줄어든다는 논리는 이해하기 어렵다”며 “명분도 명확하지 않은 가운데 실익은 없고 피해만 우려되는 표시기준 변경에 3억~4억원이나 써야 한다는 게 팩트 아니냐”고 반문하고 있다.
 

작물보호제업계가 스스로의 권리를 찾아 보장받기 위한 노력이 어디에서부터 이뤄져야 할지 고민해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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