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신문=이문예 기자] 

“농토피아(農+유토피아) 구현을 위해 저의 모든 것을 쏟겠습니다.”

이성희 신임 농협중앙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이같이 밝히고, 농협의 정체성 확립을 제일의 과제로 꼽았다. 농업·농촌·농업인이 행복한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다. 농산물 수입개방과 수급 불균형으로 어려움에 처한 농업인들이 이 회장의 취임을 환영하는 이유다.

농협의 정체성은 농협의 설립 목적에서 보듯이 농업인의 권익 향상에 있다. 농협법 제1조에 따르면 농협의 설립 목적은 농업인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제고, 농업 경쟁력 강화를 통한 농업인의 삶의 질 제고 등에 있다. 특히 ‘농가소득 향상’이 농협 정체성의 핵심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농가소득 향상의 핵심은 농산물이 제값에 팔리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품목별 조직화를 통해 농가가 산지 거래교섭력을 높이고 유통업체의 가격 결정권 행사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농협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방향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이 회장은 농협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농업인 월급제, 청년농업인 육성, 여성조합원 지원 확대 등을 언급했다. 그러나 농업인 수당, 농업인 퇴직금제 등은 농정수단의 일환이지 정체성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인다. 특히 농업인 월급제는 농업인들간에도 호불호가 강한 제도인 만큼 농협의 역할을 강조하고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구체적이진 않더라도 방향성을 드러낼 만한 약속 하나쯤은 있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묻게 된다. 

공약(公約)이 공약(空約, 헛된 약속)이 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감당하지 못할 약속을 했거나 그야말로 속이 빈 약속을 했거나.

전자가 리더의 '과욕'이나 '선심성 약속' 정도로 해석된다면, 후자는 '농정 철학의 빈곤'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리더의 과욕보다 더 두려운 것은 철학의 빈곤이다. 리더의 말과 글에 철학이 드러나지 않으면 리더를 좇는 무리는 방향성을 잃고 헤매기 일쑤다. 농토피아나 농협의 정체성 확립에 대한 고민과 철학을 드러내는 속이 꽉 찬 계획이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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