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신문=홍정민 기자]

최근 사진 한 장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인터뷰를 하면서 민승규 한경대 석좌교수가 보여준 사진에는 비행시간으로 11시간 넘게 떨어져 있는 네덜란드에 재배시설을 해 놓고 우리나라에서 컴퓨터 앞에 앉은 젊은이들이 인공지능(AI)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모습이었다. AI 기술로 우리가 먹는 오이와 토마토가 탐스럽게 생산됐다는 점에서 신기함과 동시에 주뼛 전율이 느껴졌다.

우리나라 농업의 강점과 약점에 관한 질문에 사진을 보여준 민 교수는 빅데이터, AI와 관련해 몇 가지 사례를 들며 답을 공유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한 가지는 중국의 한 IT 기업이 세계 식량문제의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주최한 세계 농업 인공지능 대회인데 제1회 대회는 오이를, 제2회 대회는 토마토를 키우며 최고의 베테랑 농부와 마이크로소프트, 텐센트 등 인공지능팀 5개 팀이 최종 본선전에서 생산성, 품질 등을 놓고 한 판 승부를 펼치는 것이었다.

농사 경험이 전혀 없는 20~30대 10여명이 한국 대표로 인공지능팀을 꾸려 대회 첫 출전에 전 세계에서 3위를 했다는 결과도 정말 놀랍지만 그 보다 더 주목할 부분은 대회 두 번째 만에 해당 분야에서 최고의 베테랑 농부가 본선 경쟁에서 순위에 들지 못하고 인공지능팀들에 져 꼴찌인 6위를 했다는 것인데 이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AI는 가상공간에서 문을 하나 열 때도 수 만 번, 수십 만 번의 강화학습을 통해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짧은 시간에 해결방안을 찾아낼 수 있다고 하는데 AI가 가상공간이 아닌 실제 오이와 토마토 농사에서 베테랑인 인간 농부를 따돌리고 1위에서 5위까지를 모두 차지했다는 점은 신기하기도 하지만 인간의 노동력 가치 하락이나 가치 상실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두렵기까지 하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오프라인과 온라인, 구매자와 판매자, 서비스와 제품 등 다양한 영역에서 경계가 희미해지거나 사라지는 경제융화 현상인 빅블러 현상이 이미 농업에서도 진행되고 있고 농업인도 시대적 흐름에 맞춰 담대한 도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최근 축산부문에서도 고기 제조에 있어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맛, 질감, 생산비 등을 조절할 수 있다는 대체육이 주목받고 있는 것을 볼 때 빅블러 현상은 이제 모두에게 매우 익숙해질 가능성이 높다. 축산업계의 경우 그동안 경쟁자가 대체재인 수입육 또는 축종별 육류 등 내부에 있었다면 아예 경계 밖인 외부에서 육류 생산과 유통부문을 위협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있는 것이다.

국내 축산은 가축분뇨처리, 악취 저감, 가축질병 등 각종 환경문제에 직면해 있는데다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대체육이라는 경쟁까지 더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름만 대면 아는 유명 요리사들도 이젠 환경에 대한 중요성을 요리사의 주요 의무 중 하나로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빅데이터, AI와 더불어 산업간 경계를 초월하고 생태계 중심으로 경쟁 범위가 확대되는 빅블러 시대, 축산업이 인류의 생명을 위해 존재하는 생명산업이라는 점을 잊지 말고 그에 걸맞게 끊임없이 변모하길 바란다. 그리고 더 나아가 국민에게 사랑받고 더 많은 행복감을 주는 동시에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성장 발전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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