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2000억 원 투입했지만 급이비율 15%…초라한 성적표
배합사료 구매 지원 아닌 R&D확대로
생산성·경제성 개선된 배합사료 필요
정부가 추진하던 배합사료 의무화가 결국 백지화 수순을 밟고 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당초 2022년부터 시행예정이었던 배합사료 의무화는 어업인의 반발 등으로 연기됐다가 최근 의무화는 무기한 연기하고 정책방향을 ‘배합사료 활성화’로 선회했다. 사실상 백지화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배합사료 의무화 정책을 둘러싼 논란을 짚어봤다.
# 20년간 ‘준비’만 한 배합사료 의무화
해수부의 배합사료 의무화는 역사가 깊다. 해수부는 양식장에서 사용하는 생사료가 바닷물의 수질을 오염시키고 자원 남획, 식품안전관리상 한계 등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배합사료 사용활성화 정책을 마련해 예산을 투입해왔다.
실제로 2008년부터 양식장에서 배합사료를 의무화한다는 목표하에 2004년부터 사업의 명칭을 바꿔가면서 배합사료 지원사업을 이어왔고 지난해까지 투입된 예산은 1935억5800만 원에 달한다. 배합사료에 대한 재정지원이 이어지는 기간 동안 해수부는 수차례에 걸쳐 말을 바꿨다. 당초 2008년이었던 의무화 계획은 제도적 준비가 부족하다는 이유 등을 들어 무산됐고 2016년에도 의무화를 시도했으나 역시 무산됐다. 또한 2019년 2월 발표한 ‘수산혁신2030계획’에서는 2022년부터 친환경 배합사료 사용 의무화 방안을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을 밝혔으나 배합사료 현장실증의 문제로 연기되다 결국 무기한 연기됐다. 이 가운데 해수부는 올해 또 환경친화형 사료구매지원사업에 104억1400만 원, 배합사료 직불제에 199억8000만 원을 편성하는 등 303억9400만 원이 투입한다.
20년에 걸쳐 2000억 원 가량의 예산을 투입했지만 배합사료 사용비율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06년 이후 배합사료 급이비율은 연도별로 편차는 있지만 대체로 15% 내외에서 형성됐고 지난해에는 15.59%를 기록했다. 20년 넘게 국민의 혈세 2000억 원을 투입한 결과치고는 초라한 성적표다.
# 목적부터 잘못된 배합사료 의무화
해수부가 추진해온 배합사료 의무화 정책은 제도의 목적부터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료는 어류양식에 투입되는 가장 중요한 자재인데 배합사료 의무화의 목적은 그 출발선부터 양식산업의 고도화가 아닌 환경보호에 맞춰졌다. 생사료 사용이 미성어의 남획을 유도하는 측면이 있는 데다 유실된 사료가 해양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만큼 이를 막기 위해 배합사료를 의무화한다는 것이다.
미성어의 남획을 줄이기 위한 목적이라면 수산자원관리법과 하위법령을 개정해 미성어를 어획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 타당하며 유실된 사료로 인한 해양환경오염 문제는 어장에 대한 심사평가와 육상 수조식양식장은 배출수의 인, 질소 등 오염물질에 대한 관리로 대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해수부의 수산자원관리정책과 배합사료 의무화 정책이 상충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수부는 ‘연근해어업 선진화 계획’의 일환으로 금지체장 등의 규제를 폐지하거나 완화하는 대신 총허용어획량을 중심으로 어업을 관리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수산자원관리제도는 미성어 어획이 용이하도록 개편하면서도 배합사료는 의무화하는 것은 정책이 상충된다는 지적이 나온다ㅓ.
수산업계의 한 전문가는 “해수부가 미성어 문제를 해소하려면 소관 법령인 수산자원관리법을 통해 해결하고 해양환경문제는 해양환경관리법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타당한 것 아닌가”라며 “해수부가 제시한 배합사료 의무화는 합당한 논리가 없다”고 지적했다.
# 배합사료 지원 아닌 R&D 투자 확대해야
양식업의 배합사료 사용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어업인들에게 배합사료 구매를 지원할 것이 아니라 사료 연구개발(R&D)을 확대해야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식업에서 배합사료를 사용하는 것은 경험에 기반한 노동집약적 산업을 기술 중심의 첨단산업으로 전환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로 지목된다. 특히 최근 양식장의 구인난과 인건비 상승, 어장환경악화에 따른 폐사율 증가 등을 감안하더라도 성장과 경제성이 개선된 배합사료가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판매되는 양어용 배합사료는 품질이 아닌 가격에 초점을 맞춘 상품이 더 많은 상황인터라 생산성 개선 등에 한계가 있는 실정이다.
양식업계의 한 전문가는 “20년 동안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지만 배합사료가 차지하는 비율은 제자리 걸음이다”며 “어업인들에게 직접적으로 구매비용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집중적인 R&D를 통해 어업인들의 눈높이에 맞는 사료를 개발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배합사료에 대한 연구는 사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종별 사용관리부터 약품 사용까지 모두 아우르는 내용이 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