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신문=박세준 기자]
사마천의 역사서 ‘사기’에 따르면 옛날 옛적 중국의 순 임금은 끝없이 범람하는 황하를 다스리기 위해 ‘곤’을 등용했지만 9년이 지나도록 치수에 실패하자 추방하고 ‘우’를 등용했다고 한다. 치수 사업 기간 동안 우는 자기 집 앞을 세 번을 지났어도 들르지 못할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다가 결국 성공한다. 우는 그 공적으로 왕위를 선양받아 하나라를 창건한다.
고대 사회에서 치수라는 것은 왕이 될 수도 있는 업적이었던 것이다. 수천 년 이후 월등히 발전된 경험과 기술을 갖춘 오늘날에도 치수의 중요성은 간과될 수 없다. 인간과 농업은 물과 떼려야 뗄 수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 직속 국가물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우리나라 용수 사용량은 244억㎡인데 그 중 농업용수만 154억㎡로 전체 63%를 차지하고 있다. 농업이 국가 용수 사용량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정작 용수 정책에서 농업은 소외된 면이 없지 않다.
이는 용수 관련 정부 조직과 예산이 환경부가 1실 12과, 4조 원인데 반해 농림축산식품부는 2과, 1조7000억 원이라는 데서도 드러난다.
강정현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이 지난달 24일 농어촌물포럼이 서울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개최한 정책토론회에서 “농업용수 관리의 유일한 법적 근거인 농어촌정비법에 ‘농업용수 관리’, ‘물관리’ 단어도 찾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새로운 패러다임의 법 개정이 필요하고 농식품부에 농업용수 정책을 총괄하는 국 단위 조직 신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도 이 맥락이다.
현재 농어촌정비법 체제 아래에선 농업용수 시설이 노후화가 상당히 진행됐음에도 유지·보수·성능개선 등에 대한 규정이 미비하고 예산도 없어 농식품부와 한국농어촌공사가 좋은 정책과 사업을 기획해도 예산이 없어서 제대로 시행을 못하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주요 농업용수 수리시설인 저수지의 절반 이상이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고 있을까. 우리나라 저수지의 87.2%는 만들어진 지 50년이 경과돼 노후화가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노후화된 저수지는 집중호우 시 물그릇이 아니라 제방 붕괴 등으로 물폭탄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1945년에 준공된 충남 부여의 구교 저수지는 지난달 밤 사이 236mm의 강수를 버티지 못하고 제방이 무너져 인근 마을에 침수 피해를 불러일으켰다. 보도 마찬가지로 1945년 이전에 만들어진 것을 포함해 50년 이상 된 시설이 전체 52.1%에 달한다.
‘극한호우’라는 자극적이고 생소한 용어가 몇 년 사이에 당연하게 쓰일 만큼 기후위기로 인한 이상기상 현상이 상시화되는 가운데 이같이 낡은 수리시설이 농업인이 원하는 원활한 물 공급은 물론, 수재해에 맞서 농촌·농업을 지킬 수 있을지도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이제 시설 공급 위주의 농촌 근대화가 아니라 기후위기 관점에서 농어촌정비법 개정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