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신문=이한태 기자]
“잘 못 들었습니다.”
군대에서 주로 상대방이 한 이야기를 잘 듣지 못하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때 다시 한번 말해달라는 의도로 사용하는 말인데 최근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의 모습을 보면 이 말이 종종 떠오른다.
추석을 앞두고 농촌 현장은 그야말로 분주하다. 특히 농업생산비 증가에 80kg 한 가마에 17만 원대까지 하락한 쌀값으로 이중고를 겪는 벼 재배 농업인은 풍년농사가 되더라도 수매가격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이런 농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농식품부는 쌀 문제를 미곡종합처리장(RPC)만의 문제로 치부하며 대책과 책임을 농협에 떠넘기는 모양새를 보여 국회와 농업 현장으로부터 빈축을 샀다. 농협이 1000억 원을 들여 쌀 소비촉진에 나서겠다고 했을 때도 쌀 재고 해소와 구조적인 공급과잉 문제의 해결방안이 아니라며 답답해했다는 말도 전해졌다.
특히 최근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쌀값 하락의 주된 원인을 ‘농협이 수요 이상의 쌀을 시세보다 비싸게 매입해 팔지 못하고 재고로 쌓아둔 탓’이라는 취지의 얘기까지 나왔다. 농협에 보다 적극적인 쌀 소비촉진 노력이 필요하다는 취지였으리라고 애써 이해해보려 하지만 이러한 발언은 진의가 어떻든 ‘농협에 쌀을 수요에 맞는 적당량만을 적정가격(시세)에 매입하라’는 메시지로 해석되기에 충분하다. 나아가 벼 수매가가 낮아져야 쌀 재배의향이 낮아져 적정생산이 가능해질 것이란 취지였다고 풀이하는 이들도 있다. 벼 수매가를 올리기 위해 투쟁까지 불사하겠다는 농업인이 들으면 복장이 터질 얘기들이다.
이에 현장에서는 ‘농식품부가 그럴 리 없다’고 믿지 않거나 ‘농식품부가 아니라 물가안정과 정부 재정만 신경 쓰는 부처’라고 비판하는 등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지만 그 근저에는 농식품부는 농업과 농업인을 위한 부처라는 믿음이 있다. 때문에 ‘잘 못 들었다’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벼를 수매하는 농협은 농업인 생산자협동조합이며 벼 수매가는 벼농사를 짓는 농업인의 연봉과도 같다. 이러한 농협이 조합원인 농업인의 소득과 직결되는 벼 수매가를 시세에 맞춰 팔 수 있는 물량만을 매입하는 것은 농협이 앞장서 농업인의 소득을 줄여야 한다는 말과 다름이 아니다. 지역 농협이 적자를 감수하고라도 되도록 높은 수매가를 가져가려 했던 주된 이유다.
물론 지금의 쌀 문제가 생산과잉과 소비감소가 맞물려 만성화, 구조화되는 양상을 띠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농수산물의 수급균형과 유통구조 개선, 가격안정 그리고 농어업인의 이익 보호는 농협이 아니라 헌법이 명시한 국가의 역할이자 책무라는 점은 부인할 수는 없는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