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신문=박유신 기자]
풍요로운 결실의 계절이지만 농촌 현장은 수확의 기쁨보다는 삶의 걱정에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수확기를 맞은 쌀 생산농가는 작황 부진에 따른 생산량 감소에 더해 기대 이하의 쌀값에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 농가소득 하락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 농업은 지난 세월 눈부신 성장을 일궈왔고 발표되는 수치가 이를 증명하고 있지만 ‘왜 농가는 힘들 수밖에 없을까?’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시기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 농림업 생산액은 60조585억 원에 달한다. 20년 전인 2003년 33조2000억 원과 비교하면 2배가량 증가했다. 농림업의 부가가치 역시 같은 기간 22조5000억 원에서 33조2310억 원으로 늘었다. 연평균 농가소득도 지난해 5082만8000원으로 전년대비 10.1% 증가했다. 2022년 948만5000원을 기록하며 1000만 원대가 무너진 연평균 농업소득도 1114만3000원으로 다시 회복했다. 이렇듯 외형상으로만 보면 분명히 농가 경제는 성장했고 농업인들도 과거보다 삶에 대한 걱정이 없어야 하는데 가혹한 현실은 그대로다. 농가소득 5000만 원 시대라 하지만 여전히 농업인의 빡빡한 삶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 농업의 특성과 농가소득 구조의 변화에서 어느정도 알 수 있을 듯하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농가소득은 크게 △농업소득 △농외소득 △이전소득 △비경상소득이 합쳐진 개념으로, 갈수록 농가소득에서 농외소득과 이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반면 농업소득과 비경상소득은 정체돼 있는 구조를 띠고 있다. 달리 말하면 직불금 등 정부의 지원 없이는 농업인 스스로 농사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의미다.
특히 같은 농업인이라도 재배 작물이나 영농 규모에 따라 걱정도 다르다. 논벼 재배농가만해도 지난해 농가소득(전업·1종겸업)은 3796만7000원으로 전체 평균 농가소득에 크게 못미쳤다. 이마저도 1ha 미만의 농가들은 평균보다 훨씬 적다. 결국 소규모 농가들은 소득 자체가 부족해서 힘들고, 쌀이라는 특정 작물에 집중해 규모화된 농가는 재배 작물의 가격변동에 영향을 더 받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결국 농업만으로 살기 힘들다 보니 자연스레 농외소득, 즉 외부의 경제 활동에 종사할 수 밖에 없고 규모화된 농가는 더 많이 농사에 신경써야 해 농외소득이 감소할 수 밖에 없다.
벼 농사가 영농시간이 타 작물에 비해 적고 규모도 작아 외부 경제활동 시간이 넉넉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 겪는 상황은 다르다. 주변에 마땅한 일자리도 많지 않을뿐더러 고령화와 가구원 수 감소로 부부 이외에 농사 지을 이가 없어 정부 보조금 등 이전소득 이외에 농외소득 창출은 사실상 힘들다.
결국 소농에게는 농업(쌀)소득이 많아져야 되지만 과거와 달리 비료, 농약, 농기계 등 각종 영농기자재와 근로자 등 소위 외부자본재를 조달해야하는 형태로 영농 구조가 바뀌면서 가격 상승에 따른 농가 부담은 더욱 커진 반면 소비 패턴의 변화와 인구 감소로 쌀 소비는 감소해 수입을 얻기 힘든 상황이 심화되고 있다.
과연 모든 농업인이 농업소득만으로 삶을 영위하는 게 가능할까? 답은 누구나 알고 있다. 어떤 수단을 동원해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정책의 대상을 먹거리를 생산하는 산업적 차원의 ‘농업’에 국한하기 보다는 ‘농업인’, ‘농촌’이라는 개념으로 확장하면 농업인의 삶에 있어 이야기가 달라진다. 농업인이 국민의 주요 먹거리인 농산물을 생산하는 역할과 자부심을 계속 느끼게 하면서 농촌에서의 삶도 이어갈 수 있는 다양한 정책 수단 개발이 가능해질 것이다.
11월 11일은 농업·농촌의 가치를 기리고 농업인의 헌신과 노고에 감사함을 전하는 ‘농업인의 날’이었다.
어느 순간 산업적 성장 차원의 ‘농업’에만 매몰돼 정작 중요한 사람인 ‘농업인’은 잊은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농업인이 제 역할을 수행하며 농촌에서 안정적으로 살아 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게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