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신문=박유신 기자]
쌀 ‘단경기(短耕期)’. 일반적으로 쌀 수확기 이전, 즉 재고는 줄어들고 공급은 제한적인 시기를 의미한다. 보통 9~10월에 쌀 수확이 이뤄지다 보니 일반적으로 6월 초부터 8월 말까지를 단경기라 보고 있다. 이 시기에는 쌀 수요가 예상보다 적거나 비축물량이 많으면 공급 과잉이 발생해 가격 하락이 발생하거나 반대로 공급이 부족하면 가격이 급등하곤 해 수급·가격의 불안정을 방지하기 위해 적절한 수급조절이 필요하다.
단경기 가격이 중요한 이유는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다. 단경기 쌀 가격이 과거에 비해 지나치게 낮다면 수확기를 앞둔 농가로서는 수익에 대한 기대가 줄어들고 이는 생산 의욕 저하로 이어진다. 다음 작기 계획 수립에도 영향을 미쳐 농가가 타 작물 전환을 고려하게 되고 이는 내년 쌀 생산량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지나치게 높은 가격은 생산 과잉을 유도해 장기적인 수급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단경기에는 여느때 보다 정부의 면밀한 수급관리가 필요하다.
결국 단경기 수급·가격 관리를 어떻게 하냐에 따라 올 한해는 물론 내년 쌀 시장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다.
단경기가 도래하는 현재, 산지 쌀값은 어떨까. 통계청의 국가통계포털에 게시된 산지 쌀값은 지난 5일 기준 정곡 20kg 기준 4만8598원(비추정평균가)이었다. 직전 조사때인 지난달 25일 4만8532원보다 0.1% 상승해 지난해 같은기간 4만7500원과 비교하면 1000원 가량 높다. 하지만 지난달 5일 이전까지 전회대비 0.3~0.7% 오름세를 보였던 것과 비교하면 지난달 10일, 25일에 이어 지난 5일에도 변함없이 0.1% 상승에 그쳤다. 80kg 기준으로 계산하면 19만4000원선이다. 연초만해도 올해 5월 경에는 20만 원을 넘길 것이란 기대도 있었지만 외식 수요 감소 등에 따른 소비 부진과 벼 거래가격이 주춤한 상황이어서 현재로서는 20만 원 도달 시기를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물론 농업 전문가들의 예측대로 시장재고량이 지난 2월 기준 지난해보다 24만7000톤, 16.9% 적은 것으로 추정돼 가격 상승세가 이어갈 것이란 기대에는 부응하고 있지만 지금 이상의 가격 상승폭을 기대하기 어려운 모양새다. 과거 산지 쌀값 추세를 보면 2023년을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5월 중순부터 쌀값이 하락하기 시작해 9월 셋째 주에 바닥을 찍은 후 신곡이 출하되는 10월 초에 고점에 도달하는 패턴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통계청이 지난 3월 28일 발표한 ‘2024년산 논벼(쌀) 생산비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0a당 논벼 순수익은 27만1000원으로 전년 대비 24.3%나 감소했다. 생산비가 대폭 증가했기 때문으로 10a당 논벼 생산비는 88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7000원 증가했고 20kg당 쌀 생산비 역시 전년 대비 2.6% 증가한 3만3000원이었다. 반면 10a당 쌀 생산량은 514kg으로 전년 대비 1.7% 줄면서 10a당 소득은 전년 대비 12.6%나 줄었다. 이러한 쌀농가의 경영 악화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겠지만 농가들로서는 살림살이가 더욱 어려워 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단경기와 올해 수확기 산지 쌀값에 기대가 클 수 밖에 없다.
특히 연초부터 정부의 재배면적 8만ha 감축을 두고 논란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양곡관리법 개정이 다시금 부각되는 시기인터라 산지 쌀값에 시선이 쏠릴 수 밖에 없다.
‘산지 쌀값’은 단순한 가격 지표가 아닌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정부의 양정정책의 방향과 이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가늠하는 바로미터인 것이다. 따라서 산지 쌀값의 하락은 단순한 가격 하락의 문제가 아닌 농업인의 삶과 식량의 미래, 나아가 정부와 우리 사회가 농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거울이기도 하다.
단경기 도래를 앞두고 최대한 산지 쌀값이 상승 기조를 유지할 수 있도록 정부의 철저한 모니터링과 선제적인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