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신문=이남종 기자]
최근 전 세계적으로 기후 변화의 영향이 농업 현장에 직격탄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중에서도 과수화상병(Fire Blight)은 사과, 배, 산사나무 등 장미과 과수를 위협하는 무서운 적으로 부상했다. 과수화상병은 18세기 미국에서 처음 보고된 이래 전 세계로 퍼져 나갔으며, 한국에서도 2015년 경북 지역에서 첫 발생 후 매년 확산 추세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단순한 병해충 문제를 넘어, 기후 위기와 농업 생태계의 취약성이 맞물리며 더욱 치명적으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과수화상병은 에르위니아 에님포라(Erwinia amylovora) 세균이 일으키는 질병으로, 감염된 나무는 꽃, 잎, 가지가 검게 타들어가는 듯한 증상을 보인다. 마치 화재 현장을 연상시키는 이 모습은 이름 그대로 ‘화상(火傷)’병으로 불리는 이유다. 이 세균은 비와 바람을 타고 빠르게 확산되며, 한번 발병하면 과수원 전체를 초토화시키기도 한다. 2020년 경북 안동에서는 화상병으로 인해 사과농가 30여 호가 폐원하는 등 경제적 피해도 심각하다.
화상병은 기온 상승과 강우 패턴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이 세균은 18~30도의 따뜻하고 습한 환경에서 활발히 번식하는데 최근 봄철 이상 고온과 집중 호우가 반복되면서 병 발생 조건이 더욱 잦아졌다.
또한 겨울철 평균 기온 상승으로 병원균이 월동하기 쉬워져 다음 해 피해가 누적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과거에는 주로 남부 지방에서 발생하던 화상병이 점차 중부 지역으로 북상 중이라며 위험성을 경고한다.
현재 화상병을 막는 주요 방법은 항생제(스트렙토마이신) 살포이지만 남용할 경우 내성 균주 출현과 환경오염이라는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이에 따라 농업 현장에서는 보다 지속 가능한 대안을 모색 중이다.
전문가들은 전정 가위 소독, 과습 방지, 개화기 전 살균제 처리 등 위생 관리가 핵심이라고 전한다. 또한 저항성 품종 개발을 통해 ‘홍로’, ‘쓰가루’ 등 내병성 사과 품종을 도입하거나 유전자 편집 기술을 활용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생물학적 방제, 즉 병원균을 억제하는 유용 미생물을 활용한 친환경 기술을 주목한다.
협력 체계 구축이 해답이다.
화상병은 한 농가의 문제가 아닌 지역 사회 차원의 과제다. 경북에서는 드론을 이용한 항공 감시와 인공지능(AI) 기반 조기 경보 시스템을 도입해 신속한 대응을 시도 중이며, 농림축산식품부도 2023년부터 ‘화상병 종합방제 대책’을 추진하며 예산을 확대했다. 그러나 정책만으로는 부족하다. 농업인들의 자발적인 모니터링 참여와 인근 과수원 간 정보 공유 체계가 병행돼야 한다.
화상병 확산은 단순한 농업 문제가 아니라 생태계 불균형의 신호로 읽어야 한다. 병해충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화학적 전략보다 생태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토양 건강 회복, 생물 다양성 보전, 기후 적응형 농업으로의 전환이 시급한 때다. 과수원 한구석에서 시작된 작은 검은 점이 우리 식탁과 미래까지 위협하지 않도록, 오늘의 행동이 결정적일 것이다.
과수화상병은 기후 변화와의 연관성이 크다는 점을 강조한다.
정책입안자, 농업인 모두가 고려해야 할 기후위기에 대비해야하는 경고라는 점을 주지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