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신문=홍정민 기자]
한국의 양돈 산업은 돼지유행성설사병(PED)과 돼지생식기호흡기증후군(PRRS) 등의 해묵은 질병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다. PED와 PRRS는 단순한 가축 질병을 넘어 농가에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히고 있고 현행 방역 체계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 17일 개최된 ‘2025년 민·관·학 합동 방역대책위원회 제1차 PED/PRRS 대책반 회의’는 이러한 문제점을 진단하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중요한 자리였다.
PED와 PRRS는 국내 양돈 농가에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특히 PRRS는 호남과 경기권을 중심으로 산발적인 발생이 확인되고 있다. 또한 PED의 경우 지난해 대비 발생이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겨울철마다 피해가 반복되고 있다. 실제 현장의 피해 체감도는 공식 통계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PRRS가 발생하면 유산율 10~20%, 자돈 폐사율 30% 이상, 회복까지 평균 3개월 이상이 소요되고 PED는 포유자돈 대량 폐사와 이유자돈 성장 지연으로 농가에 큰 피해를 주고 있다.
문제는 이들 질병이 가축전염병예방법상 제3종 전염병으로 분류돼 신고 시 이동 제한 등의 규제가 수반되다 보니 농가들의 자발적인 신고가 저조하고 실제 발생 현황이 공식 통계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효과적인 대응에 한계가 있다.
이에 따라 이번 회의에선 다양한 개선 방향이 논의됐다.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미국 MSHMP(Morrison Swine Health Monitoring Project) 같은 민간 주도의 자율적 질병 감시와 정보 공유 시스템을 벤치마킹해 농가와 수의사가 자발적으로 질병 정보를 공유하는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축산 차량·운전자·도축장 방역 관리 강화도 주요 논의 사항으로 인식돼 해외 사례처럼 ‘세척-소독-건조' 3단계 시스템과 인증제 도입을 검토하고 도축장의 방역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 종돈장 선제 관리와 청정화 프로그램 개발의 중요성도 부각됐다.
이번 회의에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PED와 PRRS는 국가 주도로 완전히 박멸하기 어려운 질병이고 질병 관리의 패러다임을 소위 ‘박멸’에서 ‘관리’로 전환해야 한다는 공통된 인식이 엿보인다.
신현진 충남대 교수는 PED가 자돈의 질병이 아니라 모돈에서 시작되는 질병이며, 모돈의 면역 관리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구경본 대한한돈협회 부회장은 “종식이라는 단어는 쓸 수 없어도 피해를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전문가들과 협업해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종영 한국돼지수의사회장은 PED와 PRRS가 3종 전염병에서 제외될 경우 정부의 관리 주체가 사라질 수 있어 수의사회가 비영리 전문단체로서 관리 주체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정부와 생산자단체가 펀딩하고 수의사회가 운영하는 자율 방역 시스템 구축을 제안했다.
PED와 PRRS 문제는 단순히 개별 농가의 노력을 넘어 민·관·학의 긴밀한 협력이 필수적인 복합적인 과제이다. 과학적 분석과 데이터 기반 정책 마련을 포함해 논의된 한국형 자율 보고 체계 도입, 전담 수의사 제도, 백신과 차량·도축장 관리 강화, 종돈장 선제 관리 등이 앞으로 질병 관리의 효율성을 더욱 높이고 농가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중요한 초석이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