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완 한국농업기술진흥원 사업지원팀 팀장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농업의 미래를 말할 때 흔히 기술혁신을 떠올리지만, 정작 그 기술을 연구하고 실현할 사람에 대한 고민은 뒷전으로 밀리는 경우가 많다.
지속 가능한 농업과 식량 안보는 결국 ‘사람’의 문제다. 지금 대한민국 농업은 기후변화, 고령화, 청년농 이탈이라는 삼중고 속에서 근본적인 구조 전환의 기로에 서 있다. 특히 식량 자급 기반이 갈수록 취약해지는 현실은 우리에게 농업의 근간부터 되짚어 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농업의 기초 기반 연구 분야에서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일은 단지 한 영역의 문제를 넘어, 미래 농업의 지속가능성과 국가 안보를 위한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기초 기반 연구는 토양, 식물영양, 병해충, 잡초, 생리 생태 등 농업의 토대를 다지는 영역이다. 그러나 성과가 단기간 눈에 띄기 어려운 특성 때문에 그동안 정책적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이 사실이다.
한때는 전통적 농업 방식만으로도 어느 정도 성과를 낼 수 있었지만 이젠 그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디지털 전환과 스마트팜, 정밀농업 등 새로운 기술들은 농업이 더 이상 경험과 직관만으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오히려 이런 기술 기반 농업일수록 기초 연구의 뒷받침 없이는 성과를 낼 수 없으며, 과학적 사고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인재 없이는 작동 자체가 어렵다.
대표적으로 기후변화는 병해충 발생 패턴을 더욱 불확실하게 만들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병리학, 기후모델, 예측 모니터링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통합돼야 하며 이는 결국 과학 기반 인재의 체계적 양성과 장기적 연구 투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정부 역시 이러한 흐름을 반영해 농업 연구개발(R&D) 정책을 점진적으로 개편하고 있다. 기초·응용·실용 간 연계 강화, R&D 기반 인재 생태계 조성, 융합형 인재 양성 확대, 지역 거점 연구기관 강화 등은 단기성과 중심의 연구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구조로 전환하려는 전략적 접근이다.
젊은 연구자들이 장기적 비전을 품고 몰입할 수 있는 환경, 농업과 정보통신기술(ICT)·생명공학·기후과학을 연결하는 융합 인재 시스템, 그리고 지역 특성에 맞는 연구 거점은 이제 필수적이다.
이러한 정책적 흐름의 연장선에서 농촌진흥청과 한국농업기술진흥원이 공동 추진 중인 ‘농업 기초기반분야 인재양성 R&D사업’은 농업 R&D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을 제시하고 있다. 이 사업은 토양, 식물병, 해충 등 기초 과학 분야의 연구개발과 고급 인재 양성을 동시에 추진하며 석·박사급 연구자의 참여를 대폭 확대하고 있다.
특히 학제 간 융합연구와 산·학·연 협력을 장려함으로써, 연구성과의 사회적 파급력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연구 강화 차원을 넘어, 농업과 과학기술, 정책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새로운 생태계를 여는 출발점이 되고 있다. 수도권 중심에서 벗어나 지방대학의 참여를 확대하는 노력은 지역 특성과 현장 수요를 반영한 맞춤형 연구 기반 조성에도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농업은 단순한 산업을 넘어, 대한민국의 식량안보와 직결된 핵심 축이다. 외형상 정체된 듯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과학기술, 기후, 무역, 환경 등 다양한 요인이 얽힌 복잡한 시스템이 존재한다. 이 복잡한 체계를 이해하고 풀어낼 수 있는 인재야말로 오늘날 농업이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자산이다.
농업 기초 기반 분야의 인재 양성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농업의 생존 전략이자 미래 경쟁력의 핵심이다. 정부의 R&D 투자는 단기 성과에만 치우치지 않고, 인재와 생태계를 기르는 장기적 관점으로 전환돼야 한다. 농업 R&D의 미래는 기술이 아니라, 결국 사람에게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