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신문=김동호 기자]
7년쯤 글 읽기에만 몰두한 허생은 생계유지에 지친 아내가 돈을 벌어와 달라는 말에 집을 나가 한양 제일의 갑부 변 씨에게 1만 냥을 빌린다. 허생은 그 돈으로 안성시장의 과일을 모조리 독점해 10배의 폭리를 취하고 제주도의 말총을 싹쓸이해 망건값을 10배로 올려 변 씨에게 빌린 1만 냥을 수십 배로 불렸다. 허생은 돈을 벌어 기쁘지 않냐고 묻는 시종에게 “고작 1만 냥으로 팔도를 뒤흔들 수 있으니 심히 한탄스럽도다!”고 말한다.
2010년 우리나라에서 설립된 배달의 민족은 외식산업의 판도를 바꾼 플랫폼이다. 배달음식점들을 홍보하는 것으로 시작한 이른바 ‘배민’은 2019년 ‘요기요’를 운영하는 독일 기업인 딜리버리히어로가 인수했고 이후 높은 시장점유율을 바탕으로 자사에 유리한 조건을 외식업계에 강요하다시피 했다. 이 때문에 독점적인 시장지배력을 가진 플랫폼 기업에 대한 규제 목소리가 높아지게 됐다.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과 배민의 사례는 독점적인 사업자가 미치는 해악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반면 대한민국이 독점적인 사업자의 탄생을 조장하는 사례도 있다. 수산물 유통의 관리 및 지원에 관한 법률 13조의 2는 거래정보의 부족으로 가격교란이 심한 수산물 중 해양수산부령으로 정하는 수산물은 위판장에서만 거래하도록 규정한다. 이에 따라 뱀장어가 위판의무화 대상품목이 됐고 여기에 더해 지난달 18일 발의된 수산물 유통법 개정안에서는 내수면양식수산물은 민물장어양식수협이 운영하는 위판장에서만 거래하도록 규정했다.
수산물 유통법 개정안이 국회의 문턱을 넘게 된다면 결국 뱀장어를 양식하는 어업인은 자신이 생산하는 상품의 경쟁력과 무관하게 위판장을 통해서만 거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는 결국 시장의 수급상황과 무관한 가격 결정이 이뤄지고, 이는 곧 소비자의 후생감소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생산자는 창의적이고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는 대신 가격을 통제하려고 하면서 소비가 침체될 것이고 소비자는 생산과정에서의 혁신이 없어 누릴 수 있는 혜택이 없다. 과연 누구를 위한 법률인 것일까?
뱀장어를 위판의무화 품목으로 지정한 규제는 올해 말 일몰을 앞두고 규제재검토에 들어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는 다른 무엇보다 뱀장어 위판의무화가 과연 다수 소비자의 후생을 증대시켰는지가 주요한 기준이 돼야 할 것이다. 혁신이 없는 산업은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