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신문=박유신 기자]
경기도 여주에서 45년째 농사를 이어오고 있는 김동환 씨. 2002년부터 유기농업을 시작한 그는 지금까지 친환경 농사를 이어오고 있지만 해마다 임대 계약을 다시 맺을 수 있을지 불안에 떨곤 한다. 다행스레 가까운 지인 덕에 비교적 안정적으로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있지만 1년 단위의 임대인과 구두 계약에 의존하고 있는 많은 임차농들처럼 자신 역시 같은 상황에 내몰릴지 모를 불안을 안고 산다.
자신 역시 20년 넘게 토양관리를 하며 좋은 땅을 만들었지만 지주들이 장기 임대를 꺼리며 친환경 인증 요건을 채우기조차 버겁다. 최근 들어서는 친환경 농지를 임대한 지주가 직불금 부정수급 단속 대상이 임차를 더욱 기피하는 분위기가 확산돼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일부 귀농인들은 인건비가 오르고 수익은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그나마 확보한 땅을 지키기 위해 임대료를 더 얹어주며 계약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을 보며 가족과 형제들도 ‘이제는 그만’하라고 말하지만 김 씨는 오랜 시간 쌓아온 철학이자 우리 땅을 살리려는 실천 그 자체인 친환경(유기) 농사를 쉽게 포기하기 어렵다.
한 평생 친환경 농업을 실천해 온 김 씨는 땅을 살리는 농부가 오히려 농지를 떠나야 하는 모순적인 현실에 상실감과 절망감을 느끼며 오늘도 정부에 대책 마련을 외치고 있다.
최근 임대차계약서 미작성으로 법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소위 ‘유령 농부’로 내몰리는 임차농 문제가 뜨겁게 달구고 있다.
실제 경기도친환경농업인연합회가 지난해 7월 친환경 농업인 501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결과 직불금을 받은 임차농 비율이 37.3%에 불과했으며, 임대차계약서를 쓰지 못했다는 임차농도 27.9%에 달했다. 10명 중 8명 가량은 지주가 원하지 않아서 계약서를 쓰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현실에 한국친환경농업협회, 한살림생산자연합회, 두레생산자회, 한살림·두레 소비자생활협동조합연합회 등 친환경 생산자·소비자단체들은 지난 6월부터 기자회견, 1인 시위, 집회, 1만 명 서명운동, 인증샷 캠페인 등 각종 수단을 통해 유령농부로 전락한 임차농의 현실을 알리고 보호할 정책·제도적 방안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시·군 단위 친환경 농지 확보 △농지은행을 통한 친환경 농지 우선 임대 △임대차 계약 합법화를 위한 인센티브 제공 △정책·제도의 통합적 논의 체계 구축 △부서 간 협력 강화 방안 등이 그들의 요구다.
국회에서도 실제 농사를 짓는 친환경 농업인이 제도 밖으로 밀려나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지법’과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지만 여전히 답보 상태다. 농림축산식품부 역시 실타래처럼 복잡한 사안이 엉긴 농지 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입장이었다.
하지만 그 사이 임차농은 임대차계약서가 없다는 이유로 직불금 등 각종 정부 지원에서 배제되고 인증까지 취소되며 친환경농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다행스레 생산자·소비자와 정부 간의 연결고리는 마련됐다. 농식품부가 지난 4일 친환경생산자·소비자단체 대표단과의 면담을 통해 유령농부로 이슈화된 친환경 임차농 대책 마련을 위한 민관 공동 태스크포스(TF) 구성, 실질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이날 직접 단체장들과 만난 강형석 차관은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친환경농업인들의 생계가 어려워지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내부에서 공론화해 해결책을 모색할 예정이며, 민관 TF를 구성해 함께 답을 찾아가자”고 밝혔다.
아직 2주가 채 지나지 않아 조금은 성급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그 약속 이후 아직까지 TF 구성을 어떻게 하고, 어떤 대책들을 논의할 것인지 TF와 관련한 아무런 소식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
약속은 지켜질 때 의미가 있다. 한 평생 땅을 일구고 안전한 먹거리를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것을 천직으로 아는 김 씨와 같이 농업인들이 안심하고 영농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정부의 책임있는 자세를 촉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