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혜선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생물부장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지자체·농기센터 협업해 생분해성 필름 실증·효과 검증 체계화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한 선택 건강한 농업환경을 물려주는 길
현대 농업은 비닐온실의 피복재, 멀칭 필름 등 다양한 플라스틱 자재의 사용으로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여 왔다. 잡초 방제, 토양 수분 유지, 작물 생육 증진 등 농업용 멀칭 필름이 주는 이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수확이 끝난 후 농경지에서 회수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회수됐더라도 재활용이 어렵거나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소각 ·매립되는 일이 잦다.
환경부에 따르면 국내에서 매년 약 8만 톤 이상의 농업용 폐비닐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 중 상당량이 토양에 남겨지거나 불법 소각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일부 멀칭 필름은 미세플라스틱으로 전환돼 생태계와 우리의 건강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플라스틱 농자재는 이제 단순한 농업기술 문제가 아니라 토양 보전, 식품안전, 탄소중립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환경 이슈로 다뤄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대안으로 ‘생분해성 농업용 플라스틱’이 떠오르고 있다.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분해되지 않는 기존의 폴리에틸렌(PE) 필름과 달리 토양 내 미생물에 의해 수년 내 이산화탄소와 물로 분해된다. 그래서 필름 수거와 처리에 노동력과 비용이 들지 않고, 멀칭 필름이나 묘상 포트 등 다양한 농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등에서는 관련 자재의 사용을 의무화하거나 보조금을 지원해 현장 도입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우리나라도 2022년부터 농촌진흥청이 중심이 돼 산‧학‧연 협력으로 생분해성 플라스틱 소재와 활용 기술 연구개발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내구성이 개선돼 국내 환경 조건에서 견딜 수 있는 고기능성 생분해성 소재 개발’, ‘멀칭 필름의 생분해성 시제품 제작과 현장 실증’, ‘국내 환경에 적합한 생분해성 필름 평가 기준 마련’ 등 과제를 수행 중이다.
현재 국내 생분해성 멀칭 필름은 주로 독일 바스프(BASF)사의 원료를 수입해 제조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국산 원료 기반으로 다양한 생분해성 신소재를 첨가한 시제품이 속속 나오고 있다. 이들은 사용 중에는 질기고 강하면서도 사용 후에는 빠르게 분해되는데 이 중에는 기존 단층 필름보다 내구성이 뛰어난 3층 구조의 필름도 있다. 이 필름들은 전국 다양한 지역에서 실증을 거쳐 내구성과 분해성을 검증하고 올 9월에 상용제품으로 출시될 예정이니 곧 농가에서도 이용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기술 개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현장 도입과 확산 체계 구축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자체와 농업기술센터가 협업해 지역별 특성에 맞는 생분해성 필름의 실증과 효과 검증을 체계화하고, 보급 모델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학교 급식, 로컬푸드 직매장 등과 연계해 ‘친환경 재배 인증’과 함께 ‘생분해성 자재 사용’을 강조한 농산물 차별화 전략도 소비자 인식을 높이는 데 효과적일 것이다.
지난달 3일은 ‘세계 일회용 비닐봉투 없는 날’이었다. 이는 스페인의 국제환경단체 ‘가이아’가 제안해 만들어졌으며 전 세계 40여 나라가 참여하고 있다. 이날 이재명 대통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연내 탈플라스틱 로드맵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앞으로 기후위기 대응과 지속 가능한 농업을 실현하는 핵심 소재가 될 전망이다. 유럽연합은 2030년까지 비분해성 멀칭 필름의 사용을 전면 금지할 예정이며 세계 곳곳에서도 이에 상응한 기술 개발과 제도 정비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올여름 우리가 오롯이 체감하고 있듯, 기후위기와 환경오염은 더는 미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우리 선택이 농촌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한다. 생분해성 플라스틱의 개발과 확산은 농업의 미래를 위한 필수 조건이며, 토양을 살리고 농촌을 지키며 다음 세대에 건강한 농업 환경을 물려주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