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어인에 선정돼도 대출부실 높다는 이유로 귀어창업자금 지원 거부
하지만 연체율은 일반대출보다 낮아
지자체, 귀어인 유치 어려워 모집공고도 포기
조합원 감소에도 불구 지원 소극
귀어 실패 사례 분석, 제도 한계 보완 시급
[농수축산신문=김동호 기자]
귀어인에 선정됐음에도 귀어창업자금을 지원받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 이에 대한 개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제주지역으로 귀어한 한 귀어인은 지난해 귀어인으로 선정됐지만 제주 관내 수협에서 귀어창업자금의 대출이 불가능하다고 통보를 받았다. 이후 그는 어업인후계자로 선정되며 귀어창업자금이 아닌 어업인후계자에 대한 정책자금을 받아 제주도에 정착할 수 있었다. 전북지역에서도 대출을 취급하는 수협에서 귀어인의 사업도산율이 높아 자금회수가 어렵고 이로 인한 손해가 발생한다며 대출을 거부, 귀어인이 귀어를 포기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특히 일부 수협에서는 귀어창업자금 대출을 취급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으며 일선 수협들이 어업인을 위한 정책자금마저 거부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일선 수협이 대출의 부실률이 높다는 이유로 귀어창업자금에 대한 대출을 거부하면서 상호금융 역대 최고 실적을 홍보하던 수협이 어려움을 겪으니 어촌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귀어인들부터 내팽개쳤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수협중앙회에 따르면 일선 수협 상호금융사업의 당기순이익은 △2019년 1310억 원 △2020년 1335억 원 △2021년 2226억 원 △2022년 2535억 원 △2023년 841억 원 △2024년 1417억 원 적자 등을 기록했다. 수협 상호금융 손실의 대부분은 정책자금대출이 아닌 수협의 일반대출에서 발생했다. 하지만 일부 수협에서는 정책자금의 대출부터 중단했다.
귀어창업자금이 수협 상호금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현재 귀어창업자금의 대출잔액은 3600억 원 수준으로 이 중 15% 가량은 수협은행이 취급한 자금이다. 이는 지난해 말 기준 수협 상호금융의 전체 대출금 31조1781억 원의 1%에도 미치지 못한 금액이다. 또한 수협은행에 따르면 귀어자금 대출실적은 △2019년 287명, 488억 원 △2020년 314명, 490억 원 △2021년 334명, 555억 원 △2022년 371명, 619억 원 △2023년 342명, 548억 원 △2024년 290억 원, 471억 원 등이다.
귀어창업자금의 연체율은 낮은 편이다. 해수부에 따르면 귀어창업자금의 연체율은 △2019년 0.5% △2020년 0.31% △2021년 0.75% △2022년 0.49% △2023년 0.94% △2024년 1.96% 등이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같은 기간 수협 상호금융의 연체율은 △2019년 2.78% △2020년 2.44% △2021년 1.64% △2022년 2.00% △2023년 4.14% △2024년 6.74% 등이었다.
물론 귀어창업자금이 정부의 정책자금 중에서는 연체율이 다소 높은 것은 사실이나 같은 기간 수협 상호금융의 연체율보다는 크게 낮다. 이는 수협이 고유목적인 수산인에 대한 지원기능을 소홀히 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제주의 한 귀어인은 “귀어인으로 선정 해놓고 자금 지원은 안 해준다고 하면 정부나 지자체를 믿고 어촌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어찌 하란 말인가”라며 “수협이 돈 되는 일만 하고 부실이 발생한다고 어업인에게 필요한 대출조차 안 한다면 어촌에 수협이 왜 필요한가”라고 비판했다.
일선 수협에서 대출이 거부될 경우 수협은행을 통해 대출하기도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귀어인들은 농림수산업자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보증서를 받아 대출을 신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관할권의 문제가 제기된다. 전북 부안지역은 농신보 정읍센터의 관할 지역이지만 부안수협이 정책자금 대출을 거부, 부안지역의 어업인들은 전주에 위치한 수협은행 전북지역금융본부를 찾아 대출을 받아왔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 전북금융본부 측이 정읍센터에서 발급된 보증서로는 대출이 불가능하다고 밝혔고, 결국 지자체 담당자가 농신보와 수협은행을 찾아 이들을 설득해 올해까지는 대출이 이뤄지도록 협의를 이끌어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일선 수협이 정책자금 대출을 거부하고 수협은행은 관할권 문제로 취급이 어렵다고 할 경우 지자체의 귀어인 유치는 더욱 어려워질 공산이 크다.
부안군 관계자는 “해수부의 지침에 따라 부안군에서 귀어희망자들에 대한 면접 등을 거쳐 귀어인을 선정했는데 정작 창업자금을 지원받지 못한다면 군을 믿고 귀어인으로 신청한 사람들은 어찌 해야 하나”라며 “연안지역의 지자체는 어촌의 인구 감소와 어가의 고령화로 귀어인을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인데 자금 대출이 안된다고 하니 귀어인 모집 공고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내년에 부안군으로 귀어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금융지원을 받을 수 없다면 군에서는 귀어인 모집공고도 올릴 수가 없다”며 “이 문제는 부안군이나 전북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지역으로도 확대될 텐데 그렇다면 청년들의 귀어가 불가능해지는 것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수협이 귀어인에 대한 금융지원에 소홀한 가운데 수협의 조합원은 감소하고 있다. 수협중앙회에 따르면 회원조합의 조합원 수는 2019년 15만7300명에서 꾸준히 줄어 지난해 15만293명까지 감소했다. 최근의 어가인구 고령화와 감소세를 감안할 때 향후 10년 안에 조합원 수의 감소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협이 귀어인에 대한 정책자금 지원에 소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에 대해 수협은행은 “귀어창업자금의 신규 지원이 원활하지 않은 조합은 연체율이 높거나 취급에 따른 손실이 많이 발생한 일부 조합이며 올해에는 32개 수협에서 136명에게 219억 원의 귀어창업자금이 신규로 지원됐다”며 “앞으로도 수협은 귀어창업자금이 원활하게 지원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송효진 수협중앙회 상호금융부장은 “현재 일선 수협의 경영상황이 좋지 않은 만큼 일선 수협이 어려움을 호소하면 수협은행에서라도 귀어창업자금을 비롯한 정책자금이 적시에 공급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며 “또한 정책자금의 부실문제가 대두된 만큼 정부와 수협 등이 참여한 가운데 정책자금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대책을 논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황준성 해수부 수산정책과장은 “수산업은 어선어업과 양식업 모두 농업에 비해서도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크고 사고 발생시 손실규모도 크다”며 “귀어를 했다가 실패했던 사례를 철저히 분석해 현행 제도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보완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