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인 한국농업기술진흥원 벤처투자지원팀장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도시 한복판의 작은 편의점에서 ‘제로 웨이스트 간식’ 코너를 본 적이 있다. 포장재를 최소화한 과자와 남는 농산물을 재가공한 음료가 줄지어 놓여 있었는데 단순히 먹거리를 파는 공간이 아니라 소비자의 가치관을 담아낸 문화 공간처럼 느껴졌다. 음식은 배를 채우는 수단을 넘어 자신이 어떤 삶을 추구하는지 드러내는 매개체가 되었다. 이 변화는 농식품 스타트업의 탄생 방식에도 뚜렷하게 반영되고 있다.

최근 농식품 스타트업은 더 이상 특정 기술이나 아이템 하나로만 승부하지 않는다. 개인의 생활습관, 건강관념, 환경에 대한 태도 등 삶 전반을 담아낸 창업이 대세다. 식물성 단백질을 활용한 대체식품, 맞춤형 건강 간식, 친환경 포장 솔루션,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구독 서비스까지 모두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정교하게 읽어내며 시장에 자리 잡고 있다. 과거에는 대량 생산과 효율성이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개인의 취향과 가치관을 반영하는 것이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른 것이다.

여기에 인공지능의 등장은 농식품 스타트업의 무대를 한층 넓히고 있다. 인공지능(AI)은 소비자 데이터를 분석해 맞춤형 식단을 추천하거나, 농산물의 수급을 예측해 낭비를 줄이는 데 활용된다. 또 제품 개발 과정에서도 AI는 맛의 조합을 시뮬레이션하거나 새로운 레시피를 설계하는 창의적 도구로 쓰인다. 과거라면 전문가의 직관과 경험에 의존해야 했던 영역을, 데이터 기반의 AI가 빠르고 정밀하게 보완해주고 있는 것이다.

창업 현장에서는 AI를 접목한 다양한 시도가 속속 등장한다. 유전자 분석과 식습관 데이터를 결합해 개인별 맞춤형 영양 간식을 제공하는 스타트업 뿐만 아니라 이미지 인식 기술을 활용해 냉장고 속 남은 식재료로 만들 수 있는 레시피를 추천하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이런 서비스는 단순히 편리함을 넘어 건강과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며, 소비자의 일상 속 깊숙이 들어가고 있다.

농업 분야에서도 AI와 농식품 스타트업의 만남은 기대감을 높인다. 스마트팜에서 수집되는 방대한 데이터가 AI와 연결되면 생산 효율은 물론 품질 관리까지 가능하다. 이를 통해 안정적인 원재료 공급이 이뤄지고, 스타트업들은 더욱 다양한 가공식품과 서비스로 확장할 수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매끄럽게 잇는 연결고리로서 농식품 스타트업의 가치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이 과정에서 한국농업기술진흥원(KoAT)과 같은 기관의 역할도 중요하다. 기술이 현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과 사업화를 지원하고, 창업 전주기 맞춤형 지원을 통해 스타트업이 필요한 멘토링과 투자 연계가 뒷받침될 때 스타트업은 더욱 단단하게 성장할 수 있다. 특히 AI 기반 기술은 초기 실험과 검증에 많은 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공공의 지원이 있어야 지속적인 도전이 가능하다.

앞으로 농식품 스타트업은 ‘먹거리 창업’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생활 전반을 혁신하는 주체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AI가 더해진 농식품 스타트업은 단순한 기술기업이 아니라, 건강한 식습관과 환경 보호,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아우르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주역이 된다.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과 맞닿은 창업은 유행을 넘어 장기적인 시장의 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농식품은 우리 일상인 삶과 가장 밀접한 산업이다. 그렇기에 변화의 속도도, 파급력도 크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로 무장한 창업가들이 우리의 식탁과 생활을 바꾸고 있다. 농식품 스타트업은 더 이상 주변부의 실험이 아니라, 일상의 풍경을 새롭게 그려내는 중심 무대에 올라섰다. AI라는 날개를 단 농식품 스타트업이 앞으로 어떤 미래를 펼쳐나갈지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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