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우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밭작물개발부장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우리나라의 밭작물 재배는 기상 조건, 토양 환경, 병해충 발생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생육과 수량의 변동성이 크게 나타난다. 이러한 요인들은 농가의 생산성과 품질 안정성을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해 왔다. 그동안 농업 현장에서는 농업인의 경험적 판단과 일부 환경 기자재를 활용해 생육 상태를 진단했지만 지역·작물·시기별 편차가 커 객관적 데이터 확보에는 한계가 있었다.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이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농업에서도 작물 데이터를 기반으로 생육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분석하려는 시도가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특히 영상 분석, 센서 데이터 처리, 빅데이터 기반 패턴 인식 기술은 수분 장해, 양분 결핍, 병해 발생 등 생육 이상을 조기에 파악하고 예측하는 핵심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경험 중심의 전통 농업을 데이터 기반의 ‘정밀농업’으로 전환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다.

현재 AI를 활용한 밭작물 생육진단 기술은 크게 영상 기반 분석과 센서 기반 데이터 분석으로 구분된다. 영상 분석은 드론, 위성, 고정형 카메라로 작물 잎의 색·형태 등 생육 변화를 촬영해 딥러닝 모델로 분석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고추나 콩 등에서 병해 초기 증상을 영상으로 판별해 신속히 대응하는 실증 연구가 진행 중이며 잎의 색상 패턴으로 질소 함량을 추정해 비료 시비를 최적화하는 기술은 상용화 단계에 들어섰다. 센서 기반 기술은 토양 수분, 전기전도도(EC), 엽록소 등 생육 지표를 실시간 측정하여 이를 생육 데이터와 결합하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사물인터넷(IoT) 센서와 클라우드 기반 AI 플랫폼을 연계해 농가가 스마트폰으로 생육 상황을 확인하고 시비·관수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서비스도 보급되고 있다. 일부 작물과 특정 생육 요소는 이미 현장 활용이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평가다.

AI 기반 밭작물 생육진단 기술이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으나 현장 적용에는 여전히 몇 가지 과제가 남아 있다. 첫째, 데이터의 지역성과 계절성이다. 동일한 작물이라도 토양, 기상, 재배 방법이 달라지면 생육 양상이 크게 변하기 때문에 특정 지역의 데이터로 학습한 AI 모델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둘째, 영상 데이터의 경우 잡음(noise)이나 조명 조건에 따라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고, 센서 기반 데이터는 설치·관리 비용 부담이 따른다. 셋째, 농가 입장에서는 기술의 신뢰성과 경제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도입이 쉽지 않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역별·작물별 표준 데이터셋 구축이 시급하다. 농업 연구기관과 민간 기업이 협력해 데이터 공유 플랫폼을 마련하고, 다양한 환경변수를 고려한 학습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또한 단순한 생육진단에 그치지 않고, 진단 결과를 바탕으로 비료 시비량이나 병해 방제 시점 등 구체적인 의사결정을 제시하는 ‘처방형 AI’로 발전해야 한다.

나아가 농가가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저비용·고신뢰성의 현장형 플랫폼을 확산함으로써 기술의 실질적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 AI 기반 생육진단 기술은 농업 생산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효율성과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핵심 수단이다. 데이터 기반 정밀농업으로의 전환이 가속화될수록, 우리 농업은 더 이상 ‘감(感)’에 의존하지 않고 과학과 데이터로 미래를 설계하는 산업으로 도약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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