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간 계속됐던 경기 침체가 올들어 조금씩 풀리고 있다는 느낌이다. 특히 지난 설 제수용이나 선물용으로 한우고기에 대한 수요가 예년에 비해 크게 늘어 났다는 것도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아직도 완전히 회복되려면 1년의 기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전망이지만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여 좋다. 희망이란 삶을 윤택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경기가 회복되면 축산물 소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더욱 그렇다. 새로운 변수만 없다면…
지난 설 전 (사)소비자시민모임은 최근 서울지역 백화점·대형할인점·정육점 69곳을 대상으로 쇠고기 유통실태를 조사한 결과 무려 19곳이 젖소고기를 한우로 속여 팔고 있었다고 밝혔다. 유전자(DNA) 분석을 이용한 이번 조사에서는 4개 백화점과 5개 대형할인점은 모두 한우쇠고기 판매가 입증된 반면 일반 정육점 60곳 가운데 32%인 19곳이 둔갑판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도로 한우고기의 판매량이 얼마나 줄었는지는 아직 분석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많은 소비자들이 한우를 사려고 백화점이나 대형유통매장을 찾거나 아예 한우고기 구입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더이상 우롱당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축산물 브랜드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달에는 18곳이 소비자단체가 인증한 우수 브랜드경영체로 선정됐다. 민·관이 땀흘려 노력한 결과가 하나씩 결실을 맺고 있다. 종자·사료·사양관리를 통일하고 일정 규모를 유지하면서 이 과정을 소비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했다.
이 모든 작업들은 부정과 둔갑판매로 인해 불신받아 온 국내산 축산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불신의 골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소비자들은 국내산이나 외국산 축산물을 구분하지 않는다. 오히려 속고 사느니 아예 외국산을 사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소비자들이 증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둔갑판매가 빈발하는 한 브랜드 인증이나 우수 브랜드 선정 등의 당근책만으로는 결코 소비자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혹자는 그래서 소비자 인증 브랜드가 필요하다고 할 지 모른다. 맞는 말이다. 문제는 전국에서 봇물터지듯 생겨나고 있는 축산물 브랜드에 대한 관리이다. 허술한 브랜드 관리는 브랜드 사업 전체를 흔들리게 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브랜드 사업은 축산업이 유지 발전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따라서 엄격한 관리기준을 설정하고 제멋대로의 브랜드를 마치 고품격의 브랜드로 속여 팔거나, 속칭 잘나가는 브랜드를 자신의 축산물에 부착 판매하는 부정유통의 경우 철저한 응징이 뒤따르지 않으면 우리는 여전히 이름뿐인 축산물 브랜드 800여개의 시대에 살 수밖에 없다.
몇 해 전 일본에서는 물량부족을 채우기 위해 수입쇠고기 15톤을 와규(和牛)로 둔갑판매하려다 적발된 굴지의 식품종합회사인 유키지루시(雪印)가 도산된 일이 있다. 또 일본햄이 자회사인 일본 푸드의 둔갑판매로 회사 전체가 도산의 위기에 직면한 적이 있다. 신뢰를 배신했을 때 일본 소비자들의 철저한 응징을 우리가 해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몇 푼의 과태료만 내면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지나가는 일들이 되풀이되면 수많은 노력들은 몇 푼의 가치로 전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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