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세계에서 철밥통이라는 단어를 가끔 접할 기회가 있다. 물론 공무원뿐만 아니라 다른 직업군에도 통용되는 표현이기도 하다. 철밥통은 글자 그대로 쉽게 깨지지 않는 밥통으로 풀이할 수 있듯이, 밥이라는 즉 먹거리라는 생존권을 지키면서 짤릴 위험이 없는 직업(인)을 비유할 수 있다. 샐러리맨들이야 노상 짤릴 위험에 처해 살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부도가 나지 않을 직장에서 안전하게 밥통을 챙기는 공무원들이 그래서 더 가슴에 와닿는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승진 못해도 대충 눌러앉아 있으면 퇴직전까지 평생 직장을 보장받는 공무원 세계의 철밥통은 이제 옛말이 될 것 같다. 참여정부 들어서면서 정부혁신 차원에서 공무원에 대한 대대적 개혁작업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가운데 팀제니 고위공무원단이니 하는 초개혁적인 제도와 조직 개편이 현실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연공서열을 파괴하고 오로지 업무평가로 승부를 걸게함으로써 직원간 경쟁을 유발시켜 승자는 살아남고 패자는 사라질 수밖에 없는 파격적인 현상이 예견되고 있다. 이 때문에 공무원 자신들도 헷갈릴 정도로 급변하고 있는 혁신내용에 놀라고,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연상하면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현재 해양수산부 공직자들 역시 이처럼 빠르게 추진되고 있는 정부조직 혁신방안이 최대의 화두로 급부상하면서 앞으로 살아 갈 길을 고민하고 있다. 특히 내년에 시행될 예정인 고위공무원단제 운영과 관련 고위 공직자들은 하나같이 마음을 비우고 직무에 임한다는 분위기다.
중앙인사위원회가 내년 중앙부처 실국장급(1~3급) 1500여명을 대상으로하는 이 제도는 현재 실국장급은 이 공무원단에 일괄 편입하고 새로 진입하는 사람은 역량평가·후보자 교육과정 이수 등을 통해 자격을 획득하게 한다. 즉 기존의 직급을 없애고 직무평가에 따른 등급(A,B···급)으로 나눠 부처간 벽을 허물고 성과에 따른 연봉차등 적용 등 현재 고위공무원을 범정부적으로 관리한다는 제도다.
해양수산부의 경우 1~3급 고위공무원이 44명으로 이들은 어떤 부처든지 능력과 업무평가에 따라 발탁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직무능력이 있고 유능한 인재는 소위 좋은 부처로 언제든지 이동할 수 있는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매 5년 정기적으로 또는 부적격사유 발생시 수시로 적격성 심사를 통해 부적격자는 직권면직 등 인사 조치를 받게됨으로써 벌써부터 긴장감과 스트레스가 쌓이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해양수산부 한 고위공직자는 “이 제도는 아마 고위공직자가 많은 타부처를 타깃으로 고위 공무원들을 솎아내기 위한 느낌이 들지만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이 공직자의 말과 함께 또 떨쳐버릴 수 없는 우려는 정치 공무원 혹은 새로운 줄서기 문화의 탄생이다. 아무리 직무 내용물이 평가의 우선이라고 하지만 직무평가를 여론화하고 포장하는 정치적 성향의 인물이 분명히 부각될 것이고 서로 밀어주고 끌어당기는 살아남기 위한 상부상조의 줄서기를 배제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