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형!

10년이 조금 안됐군요. 타지에서 고생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참 오랜동안 격조했습니다. “내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나라고 강요하는 이 땅의 현실이 너무 싫다” 며 그렇게 만류하던 손을 뿌리치고 한국을 떠나겠다더니 정말 가족과 함께 훌쩍 떠났더군요. 형은 가고 나는 남아서 바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도통 연락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형도 연락을 안한 것은 아마도 조금은 후회스럽고 힘겨운 시간에 치여 선듯 소식을 전하지 못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말 이 나라가 내 나라라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 때면 어김없이 잊고 지냈던 형이 생각납디다. 사랑이 깊으면 아픔도 깊다고 왜 그렇게 못견디게 아파했는지 이해도 됩디다. 그래도 나는 희망이 있다고 믿었고, 떠난 형이 잘못 생각한 것이라 확신하고 싶었습니다.

K형!

며칠전 미국산 쇠고기 BSE(소 해면상뇌증)와 관련해 농림부에서 기자간담회가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축산국의 한 관계자는 BSE가 발병한 소라도 살코기는 안전하다고 말했답니다. 얼마전 미국의 수출재개 압력이 강화되면서 일본의 반발 수위가 크게 낮아져 수입이 곧 재개될 것이란 전망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조만간 압력에 직면해 일본의 절차를 밟지 않겠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가지만 해도 일본은 BSE 발생국이고 우리는 비발생국이므로 경우가 틀리다고 확신에 찬 답변을 해 왔던 농림부의 논조가 크게 바뀌었습니다.

박홍수 농림부장관도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떤 경우에라도 정치적 압력에 굴복해 수입하지 않겠다고 못박았습니다. 그런데 농림부가 살코기는 인체에 무해하다고 설명을 하네요. 주변에서 그러더군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위한 수순이 아니냐고. 쌀 협상의 희생물이 아니냐고.

BSE는 잠복기가 무려 2~8년이고 평균으로 치면 4~5년입니다. 발병 2주에서 6개월 후 폐사하기 때문에 현재 생체에서 진단하기 어렵고 사후 조직검사로만 확진이 가능합니다. 인체에 감염되면 잠복기가 약 30년이어서 확인도 안되고 뇌가 스폰지처럼 변해 치매·보행불능 등 발병후 1년내 사망합니다. 물론 사망원인을 알아내기도 어렵습니다.

K형!

김영삼 정권시절 UR협상 당시 쌀 한톨도 수입하지 않겠다고 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외국 쌀이 들어오더군요. 그 말을 철썩같이 믿었던 농민들의 원성은 대단했습니다. 한 농민이 그러더군요. 정부는 믿을 게 못된다고. 국민을 기만하는 정부가 무슨 정부냐고.

그런 일이 한 두번이 아니다 보니 매 번 속아야 하는 현실이 싫어서 농촌을 떠나고, 대물림 못하겠다고 빚내서 자식들 죽어라 가르치는 것 아닙니까. 농촌이나 도시나 못살겠다고 하는 것은 생활고만이 아닙니다. 정작 농민이나 국민들을 피폐화시키는 것은 바로 이같은 좌절감 때문입니다.

아직도 정부는 국민을 바보로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국민들이 무조건 개방을 반대하는 줄로 착각하는 모양입니다. 공복(公僕)이 주인 행세하면서 책상머리에서 작성된 계획서를 가지고 주인을 휘두르려고 하는 만용을 보면서 누군들 내 나라 내 생업에 자부심을 가질 지 궁금하더군요.

오는 5월 OIE(국제수역사무국) 총회에서는 광우병이 발생하더라도 수입금지 조치는 내려서는 안된다는 조항을 삽입할 모양입니다. 미국이 추진하는 일이니 충분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힘없는 우리로서는 어거지로라도 BSE에 감염된 쇠고기를 먹어야 할 모양입니다.

형이 왜 나라가 내 등을 떠미느냐고 울분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저작권자 © 농수축산신문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