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지나 깐 밤의 색깔을 선명하게 하기 위해서 표백제를 썼다거나, 고춧가루에 색소를 첨가했다거나 하는 사례들이 적발될 때마다 시민들은 제 자식들에게는 먹지 말라고 했을 것이라고 자조하곤 했다. 중국산 농산물을 국내산으로 속여 값 비싸게 팔거나, 외국산 축산물을 버젓이 국내산으로 둔갑 판매하는 것에 익숙한 소비자들은 말한다. `제발 먹는 것만이라도 속지 않고 먹었으면 좋겠다''고.
먹는 것 가지고 장난하지 말라는 소비자들의 원성은 선량한 대다수의 생산자들조차 믿지 못하게 만들었다. 일부 소비자들은 값이 비싸도 믿을 수 있는 백화점 등으로 몰리기도 했지만 백화점조차 믿을 수 없는 사례들이 발생하면서 아예 수입 축산물 구입으로 패턴을 바꿔버리기까지 했다.
이제 가격이 폭락할 때마다 소비자에게 우리 농축산물을 구입해 달라고 애원해도 소비자들의 마음을 돌리기는 쉽지 않다.
“도대체 도덕성이 없어요. 순박할 줄 알았던 생산자들도 소비자를 마치 봉으로 생각합니다. 그래도 우리 농산물을 사야 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사고 나면 마치 속은 것 같은 느낌이 또 드는 것은 그동안 하도 속았기 때문입니다.”
둔갑판매니 부정유통이니 이 모든 것의 피해는 소비자뿐만 아니다. 생산자들도 마찬가지로 피해를 보고 있다. 정부나 생산자단체들이 생산자-소비자간 직거래를 추진하고 있는 것도 부도덕한 일부 중간유통업자들의 농간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이다.
최근 들어 생산자들 사이에서는 가히 `생산방식의 혁신''이라고 불리 울 정도로 생산 패턴을 안전과 위생에 맞추고 있다. 지역 협동조합들과 영농조합법인들이 본격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축산물 브랜드 사업도 같은 이유에서 이다.
쇠고기 생산이력추적시스템이나 한우 DNA 검사 등 각종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고 있는 것은 바로 국내 농축산물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을 털어내고 국내 축산물은 안전과 위생면에서 그리고 품질면에서 우수하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기 위해서 이다.
오래 전부터 생산자단체를 중심으로 제기돼 왔던 `육류 음식점 원산지표시제''가 17대 국회 출범과 함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제출됐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식품위생법 개정안''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논의도 없이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농림해양수산위원들과 생산자단체들의 요청과 설득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위원들은 요지부동이다. 심지어 일부 위원들은 “60여만 업소들의 권익 보호도 중요한 것 아니냐”는 주장까지 펴고 있는 상황이다. 음식점중앙회 등 일부 이익단체의 조직적인 로비가 있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보건복지위원회의 역할 중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복지위의 가장 큰 역할은 국민의 건강이다.
육류 음식점 원산지 표시제를 도입하면 60여만 업소의 권익이 보호되지 않는다는 것은 대다수의 음식점들이 소비자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중간 유통업체로부터 수입 쇠고기를 구입해 국내산으로 팔거나 국내산과 섞어 파는 사례들을 국회에서 계속 묵인하자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원산지표시는 생산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성실하게 축산물을 판매하는 음식점을 보호하며 더욱 중요한 것은 소비자들이 적정한 가격을 지불하고 그에 상응한 축산물을 구입하게 하는 것이다. 정직과 투명한 거래를 통한 사회적 신뢰 확보임을 알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