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을 둘러싼 주변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올해들어 일고 있는 가장 큰 변화로 첫 손가락에 쌀값 역계절진폭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올해들어 벼 정부수매제가 폐지되고, 식량안보용으로 600만석 정도를 공공비축하는 공공비축제가 도입됐고, 아직 국회비준이라는 절차를 남겨놓고 있지만 지난해 쌀수출국들과 합의한 쌀협상 결과에 따라 소비자시판용으로 수입쌀이 시판되는 등 많은 변화가 일고 있다.

그러나 쌀값 역계절진폭이야말로 이같은 상황변화에 따른 종합적인 결과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쌀은 시장출하량이 늘어나는 수확기에 가격이 하락하고, 반대로 시장출하량이 줄어드는 단경기에는 가격이 상승해야 시장원리에 따라 수급조절이 된다.

그런데 올해 들어 이같은 쌀값 계절진폭은 커녕 지난해 수확기보다 단경기 8월의 쌀값이 오히려 더 떨어진 역계절진폭 현상이 처음으로 발생한 것이다.

쌀값의 역계절진폭 현상이 발생하면 시장출하량이 크게 증가하는 가을철 수확기에 미곡종합처리장이나 유통업체들이 벼나 쌀을 대량으로 구입할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에 벼 수확기 대 혼란이 우려된다.

농민단체들이 정부의 쌀목표가격제와 고정직불금 추가인상, 벼 공공비축 매입량 100만석 추가 증량 발표에도 불구하고 `부족하다''며 추가대책을 계속 요구하는 것도 결국 역계절진폭에 의한 국내 쌀시장의 수급조절기능 상실에 따른 불안감 때문일 것이라는 판단을 갖게 한다.

특히 문제는 쌀값 역계절진폭이 올해만의 일시적인 현상이 아닐 것이라는 게 더욱 큰 문제이다. 지난해 쌀협상을 통해 `관세화 유예 10년간 추가 연장''이라는 결과를 얻어냈지만 앞으로 10년 후인 2015년 이후에도 관세화 유예를 또 다시 얻어내기란 어려울 것이라는데는 이견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말해 앞으로 10년후에는 쌀시장이 완전개방될 것이라는 점이다.
여기에다 지난해 `쌀관세화 유예 10년 추가 연장'' 대가로 저율관세 수입물량과 저율관세 수입 쌀의 소비자 시판비율을 점진적으로 늘리기로 한 점 등을 고려하면 국내 쌀값은 앞으로 하향추세가 불가피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쌀값이 장기적으로 하향추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계절진폭을 유지시켜 쌀 수급조절을 시장기능에 맡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학자들 사이에서 연 300만~400만석에 불과한 공공비축 매입량의 매입시기를 수확기가 아닌 단경기로 조정해 쌀값이 수확기에는 하락하고 단경기에는 상승하도록 계절진폭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는 것이다.

아울러 RPC가 종전과 같이 벼를 수매하는 방식을 유지할 경우 수지를 맞출 수 없어 경영난에 부딪치고, 그에 따라 도산우려마저 있기 때문에 수매방식을 수탁판매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같은 주장들은 종전과 같은 상황에서는 상상조차도 어려운 내용들이다. 그러나 쌀산업을 둘러싼 주변상황이 급변하면서 서슴없이 제기되고 있다.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적인 대응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 쌀은 중요하고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민족의 생명산업이며, 국내 농업의 근간이다. 이같은 쌀 산업을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주변상황 변화에 맞춰 대응도 달라져야 한다. 정부와 농민단체는 너나 없이 변화된 쌀 시장 상황에 맞춰 새로운 대응방안 모색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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