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의 가장 큰 역할은 경제적 문화적 약자인 농민의 권익을 대변하는 것이다. 공판장에서 농민이나 조합원들이 생산하는 농산물을 매취해 소비자들에게 공급하면서 농민과 소비자에게 이익을 남겨주는 사업들은 신용사업에서의 이익과 비교되면서 항상 푸대접을 받아왔다. 경제사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일선조합들이 도시형 조합에 비해 낮게 평가되는 것도 중앙회의 평가기준이 이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일선조합의 지도사업에 종사하는 직원들은 매일 현장에서 농민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고충을 수렴하려고 애쓴다. 승진시험 때만 되면 사무직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에 비해 상대적 박탈감을 갖는다. 어느 부서가 더 힘들고 더 많은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지적할 생각은 없다.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협동조합의 이념대로라면 우대받아야할 부서나 사업은 분명히 존재한다.
농협의 신경분리 필요성이 대두되더니 분리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농민단체를 주축으로 제기된 신경분리는 당초 협동조합을 개혁해 농민을 위한 협동조합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의도에서 시작됐다.
수입농축산물의 홍수, 경영의 불안정 등 경제·사회·문화적 분배에서 제외되면서 탈농현상은 가속화되고 농촌이 붕괴의 위기에 처해 있는 데 신용사업의 치중으로 농협은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그 혜택은 농민에게 제대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반협동조합에 대한 경종이었다.
이는 주변의 많은 지적과 개혁 요구에 따라 그 때마다 마지못해 옴지락거리는 농협의 행태에 대한 대다수 농민들의 반응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신경분리라는 결과의 대가는 농협중앙회의 직원보다 농민에게 더 큰 충격으로 돌아갈 것이 자명하다. 분리되고 나면 신용사업은 경제사업이 이전처럼 비빌 수 있는 언덕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수협중앙회에 공적자금이 투입된 후 외적 요인에 의해 분리된 신경분리를 놓고 지금 잘 됐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분리에 참여한 소수에 불과할 뿐이다. 중앙회장 밑에 신용·경제·지도교육사업은 제각각 자기의 길을 가고 있다. 특히 신용은 경제부문에 대해 은행 역할만 수행할 뿐이어서 상호간의 협력은 고사하고 감정의 골만 깊어지고 있다.
오죽하면 경제사업에 투입된 자금을 신용에서 차용하지 못하고 일반 금융을 이용하겠는가를 생각하면 농협 신경분리의 향후도 눈에 보이는 듯하다. 수협중앙회가 이전처럼 신용과 경제를 다시 합쳐달라고 건의하고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잘 말해주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신경분리론이 제기됐을 때 농협중앙회가 적극적으로 그에 대한 부당성을 말하지 못했다. 이는 신경분리를 주장하는 농민단체들의 속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으면서도 개혁의 절실함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경분리를 통해 농협을 개혁하려는 것은 반개혁에 대한 미움으로 쪽박을 깨려는 것과 다름없다. 신경분리를 전제로의 개혁은 개혁이 아니다. 경제사업이 최근 그나마 활성화되고 있는 것은 이를 뒷받침하는 자금의 물꼬가 경제사업으로 터지고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