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간 장벽이 무너지면서 세계 경제가 같은 링 위에서 생존을 걸고 치열한 경쟁을 전개하고 있다. 그동안 체력을 비축한 국가에게는 세력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이지만 어정쩡한 상태에서 링 위로 떠밀린 국가는 날아오는 펀치에 그로기 상태에 빠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링 위로 올라서는 것을 거부할 수 없다. ‘상대가 누구냐’·‘언제 올라가느냐’의 문제일 뿐 예외가 없다. 그것이 국제적 룰이다. 결전의 준비를 하기 위해 당장 강자와의 싸움을 피하고 어떻게 시간을 버느냐는 것이 대다수 국가의 관심사이다. 그것을 구체화하는 것이 전략이다.
기업이나 조직도 이와 다르지 않다. 급변하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조직 개편을 단행하는 데 만일 이를 소홀히 할 경우 외부적 변화에 의해 소리 한 번 질러보지 못한 채 단박에 풍비박산나기 때문이다.
미국 GE사의 CEO를 역임한 잭 웰치 회장은 현재 급변하는 사회에서 기업이 살아남는 길은 조직을 단순화하고 조직원에게 자신감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빠른 결정 즉 속도의 경영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몽골 기마군단의 세계 정복이 가능했던 이유는 자신들의 침입을 알리는 척후병보다 몽골 군단의 침입속도가 더 빨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경쟁 조직이 체계를 갖추기 이전에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다.
농협중앙회가 최근 농산물 수입 개방에 따른 농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국내 농산물의 유지 발전을 위해 회원조합의 농축산물 팔아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유통부문이 강화되면서 그 성과도 가시화되고 있다. 이를 극대화하기 위한 차원으로 ‘NH식품’ 설립을 가시화하고 있다. 내년도 조직 개편안에 보면 ‘NH식품’을 설립하고 향후 ‘농협목우촌’과 ‘농협고려인삼’의 계열화를 통해 종합식품회사를 운영한다는 복안이다. 농협이 직접 식품회사들과 경쟁하면서 우리 농산물을 보호 육성한다는 것은 쌍수를 들어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농협목우촌’이 국내 최고의 종합식품회사를 지향하면서 자회사로 출범한 지 4개월도 채 되지 않았다. 혹자는 ‘농협목우촌’은 축산물 전문식품회사이고 ‘NH식품’은 농산물 전문이라고 설명하지만 치열한 시장경쟁의 논리가 적용되는 식품시장의 상황을 이해하는 전문가들은 전혀 경쟁력이 없는 구상이라고 혹평한다.
‘농협목우촌’이 축산식품만으로 채산성을 맞출 수 없고, ‘NH식품’이 일선농협들의 생산물 중 축산물을 ‘농협목우촌’에 떠 넘겨줄리 없고, 이런 상황이라면 두 조직의 갈등은 깊어갈 수밖에 없으며 그 결과는 상호 부실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 뻔하다는 부연설명이다.
특히 이번 ‘NH식품’ 설립 문제는 아직도 통합농협 내부에서 농업과 축산업 따로 놀고 있음을 입증하는 꼴이다.
이미 자회사가 돼 생존경쟁의 논리가 적용되는 시장에서 일반 식품회사와 치열한 전쟁을 전개하고 있는 ‘농협목우촌’은 축산경제의 관할이긴 하지만 더 이상 축산경제만의 것은 아니다. 농협 전체의 것이다. 따라서 ‘농협목우촌’의 사업영역을 축산에만 국한시킨다는 것은 스스로의 목을 죄는 꼴이다.
‘농협목우촌’은 1200여억 원의 자본금으로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너무나 많다. ‘NH식품’이란 새로운 식품회사를 다시 설립하느니 그 자원과 인력을 한 곳으로 쏟아 부어야 한다. 시장경쟁에서 농산물 따로 축산물 따로는 순박한 생각이다. 굳이 이름이 마음에 안 든다면 개명한 들 어떻겠는가. 농협에 식품회사가 왜 필요한지를 다시 한번 곱씹어봐야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