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의 A 양돈농가는 경기도 지역에서 떨이돼지를 구입했다가 1만여 마리의 돼지농장을 하루아침에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 주인은 부끄럽다는 이유로, 그리고 주변의 손가락질을 받아 아무런 변명도 못했다. 후에 후회스러움을 이 같이 술회했다.
그러나 경기도 안성 지역 B 양돈농가의 입장은 사뭇 다르다.
“약간의 실수로도 그동안 공들였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은 물론 인부들에게도 수시로 방역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출입차량은 물론 사람들까지도 짜증날 정도로 소독을 철저히 했습니다. 그러나 인근에서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는 나만 잘해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누구에게 화를 낼 수도 없고, 참 하늘이 원망스럽더군요.”
4~5년이 지난 지금 그 농장은 농장주나 인부들의 노력에 힘입어 어느 정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옛 명성을 되찾기에는 아직도 미흡한 점이 많았다. 그는 그 때의 경험을 되살려 인근 지역의 양돈농가들에게 방역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람에게 있어서 질병은 징조를 수시로 알려주기 때문에 발병되기 전에 이에 대한 대응이 신속하다. 그러나 말 없는 가축은 웬만한 관심이 없이는 알 수도 없고, 좁은 지역에 밀집됐기 때문에 한 번 발병하면 순식간에 전체로 확산돼 그 피해가 상상을 초월한다. 악성가축질병이란 바로 이와 같은 질병을 일컬으며 그중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나 구제역은 파괴력 면에서 으뜸이다.
철새와 깊은 연관성이 있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와 달리 구제역은 국경 검역을 철저히 하면 대부분 예방이 가능하다. 그러나 국경 검역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때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것이 개인 농가들의 방역활동이 얼마나 철저하게 돼 있느냐이다. 국경 방역에 전적으로 맡긴다는 것은 자신의 생존을 남에게 맡긴다는 것에 다름이 없다.
200여억 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해 농장 소독을 해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농가에서는 농장에 방치한 채 버려두고, 또 다른 농가들은 농장 내 차량과 사람 출입이 아무런 제약없이 허용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 관리 또한 허술하다. 이러한 농장일수록 정부와 주변에 대한 불만은 높다. 그러나 자신들의 잘못이 결과적으로 다른 농장에 얼마나 큰 피해를 입히게 될 지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악성 질병은 소리없이 찾아와 일상을 완전히 파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농가들이 당장 질병으로 인한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면 잊고 산다. 아무 일이 없으면 생산비에서 질병 예방에 필요한 비용은 슬그머니 사라진다.
최근 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가축질병의 경제적 영향 분석에 따르면 가축질병으로 인한 연간 손실액은 한육우 403~1695억원, 젖소 427~1081억원, 돼지 6953~1조1840억원, 닭은 약 685억원에 이른다. 이래도 가축질병에 소홀할 것인가? 이래도 정부는 가축질병 방역에 대한 지원만 할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악성질병은 이제 발생농장 만의 일이 아니다. 방역은 국가에게만 떠맡겨야 할 과제가 아니다. 양돈산업의 톱 자리에서 어느 날 수입국으로 전락한 대만의 경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권민 농어촌경제팀장 겸 축산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