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에서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했을 당시 부동산에 조예가 깊은 A씨는 웃으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전국을 돌며 땅을 사재기하는 사람들은 지금 뭉치 돈을 들거나 유동자금을 끌어 모으고 있을 것이다”라고.

기름유출사고 발생 이전에 많은 수익을 올리던 태안을 둘러싼 수많은 펜션들이 조만간 헐값으로 나오거나 경매에 붙여질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기다리고만 있으면 부채가 많은 곳부터 무너지리라는 것이다. 참으로 기막힌 역발상이다.

그런데 최근 살인적인 사료가격 인상을 몸으로 겪어내고 있는 축산업계를 보면서 기름유출사고의 행태가 떠올려지는 것은 왤까.

사료의존율이 높은 축종의 수많은 양축가들이 삶의 기반을 버리고 야반도주하고, 출하마리당 수 만원의 적자를 보면서 할 수 없이 직업을 버리지 못하고 버티는 심정이 오죽할까마는 돈 있는 일부 양축가들은 이미 가축을 모두 출하시키고 위기가 심화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으로 허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빈익빈 부익부의 원칙(?)은 어디서나 적용되는듯하다.

향후에도 지금과 같은 사료가격 고공행진이 지속되면 조만간 돼지 사육마리수는 500여만 마리로 크게 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지만 헐값으로 떨어진 돼지를 사 모아 이후의 호재를 노리는 이들이 있는 한 그 전망은 결코 맞아 떨어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충북에서 한우 100마리를 사육하고 있는 한 농가는 “사료값 폭등으로 기존 수익의 반 이상이 그 자리에서 날라 갔다”면서 “이를 복구하기 위해서는 100마리의 한우를 더 입식해서 수익을 맞추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도 현명한 대책은 아닌 듯싶다. 지금 상황에서 규모를 키우면 그에 대한 위험부담은 배가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장기적인 사료값 폭등은 축산의 현장을 한꺼번에 뒤집어 놓았다. 영세농가의 자연도태를 전망하던 이들조차 그 심각성에 우려를 표명한다. 규모화된 농가들까지 지금의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외부자금을 끌어들일 수밖에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장을 보면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양축가들이 아무 소리없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IMF 이후 축산물 가격의 하락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행동으로 나섰던 양축가들이 개인적으로 이러한 사태를 맞고 있다는 점이 그 첫째이고, 정부까지 나서서 1조원의 사료구매자금을 지원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차 국내 농축산업을 이끌어 간다고 자부하는 농협중앙회가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일선 축협 조합장들이 최근 농협 개혁을 기치로 내세우고 있는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에게 오히려 섭섭함을 토로하고 있는 것은 축산 현장의 양축가들의 생존에 적신호가 들어온 상황에서 어떤 지원방안도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외국산 농축산물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그나마 버팀목이 되는 것이 협동조합이고, 이는 농협중앙회가 항상 이야기해 온 조합원과 일선조합 그리고 중앙회가 하나로 연결됐을 경우를 전제조건으로 한다.

농협이 부르짖는 개혁은 바로 이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위원회에서 조차 현재 축산현장에서의 아우성에 대한 대책이 공론화되고 있지 못한 현실은 과연 농협이 왜 개혁을 부르짖는 지 그 저의를 의심받게 하기에 충분하다.

<권 민 농어촌경제팀장 겸 축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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