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제이(以夷制夷). 오랑캐로 오랑캐를 무찌른다는 뜻으로, 한 세력을 이용해 다른 세력을 제어함을 이르는 말이다.

농협농기계은행사업분사가 내년부터 임대사업용으로 계획하고 있는 신규농기계 구매협상이 난항에 빠지면서 새로운 협상전략으로 이 술책을 적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농협농기계은행사업분사는 애초 임대사업용 신규농기계구매 원칙을 국내에 생산기반을 두고 있는 제조업체로부터 생산된 국산모델을 적용한다는 방침을 세운바 있다. 하지만 구매 협상과정에서 농협측이 높은 가격할인 조건과 사후봉사기간 2배 연장 등 무리한 조건을 제시하면서 국내업체들이 조건 수용에 난색을 표하면서 협상이 표류하고 있다.

농협측은 국내 업체들이 요구조건에 호락호락하지 않자 국산농기계 구매라는 원칙을 파기하고 일본 수입농기계메이커와 협상을 벌이는 카드를 들고 나왔다. 일본 농기계메이커를 불러들여 국내업체들을 자극해 유리한 협상을 유도하겠다는 복안으로 풀이된다.

일본 농기계메이커는 순 매출이익만 수조원에 달하는 다국적 기업이다. 그렇잖아도 한국에 대한 시장 확대에 혈안이 돼 있는 일본 업체들의 입장에서는 다소 무리한 수수료를 물더라도 ‘군침’을 흘려볼 만 한 꺼리가 된다. 국내업체들이 부담하기 불가능한 수수료율로 일본 업체들이 협상에 임하게 될 경우 시장에 미치는 파장은 메머드급 이상으로 예상된다.

농협농기계은행사업에 사용되는 농기계는 일본산으로 채워지고, 이를 계기로 그동안 단절돼 있던 농협계통사업에 일본 업체들이 본격참여하면서 한국농기계시장 정복의 단초를 제공할 공산이 크다.

향후 이러한 문제로 국산농기계 생산기반이 붕괴되고 나면 우리 농민들은 고가의 수입산 농기계를 아무런 저항 없이 구매해야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농협이 농기계은행사업을 전개하면서 매입단가를 낮추려는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처사로 볼 수 있다. 이를 탓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앞뒤 가리지 않고 밝은 빛만 쫓는 다면 화로에 뛰어드는 나방과 다를 바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자 하는 것이다. 이번 농협농기계은행사업분사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법은 악수(惡手)로 기록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이남종 농수산식품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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