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은 참 이상하다. 근력 있는 젊은 시절에는 엉뚱한 곳에 에너지를 다 쏟다가는 말년 인생 황혼녘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와 알짠한 감정으로 가족을 사랑하고 특히 속은 검댕이 되고 머리엔 어느새 흰 눈이 내려앉은 아내 손을 꼭 잡으며 연민의 정을 잔뜩 남기다가는 얼마 못 살고 죽는 경우가 많다.

범부들의 그런 냥이야 바람에 묻히고 말지만 가끔 사회적 명망 있는 인사 중에 그런 모습을 보인 이는 부고기사 뒷얘기로 잔잔히 흘러나와 인구에 회자되기도 한다. 젊어서 엉뚱한 짓을 한다면 대개 사업을 핑계대고 이런 저런 허튼짓을 하며 가정을 돌보지 않기가 십상인데 옛 어른들도 패가망신의 1번으로 주색잡기를 들었다. 여기서 주색이야 그렇다 치고 잡기의 범주는 어디까지고 무엇이 잡기이냐 하는 것이다.

투전, 골패, 마작, 화투 등 노름을 최대의 잡기로 봤다.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요새 같은 겨울 농한기에 시골장터에 서커스단이 들어와 한 달포 정도 공연을 하고 지나가거나 씨름판 같은 난장이 섰다하면 으레 한동네에 두어 집씩 석장노름 같은 투전판에 휘말려서 큰돈 날린 집이 나와 그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가 하면 초상집 밤샘을 핑계로 이어지는 노름판이 결국 자살소동까지 내는 화근으로 번지기 십상이다.

남자들의 잡기는 여기가 끝이 아니다. 알코올, 경마, 증권, 마약, 카지노, 투견 등 별의별 위험천만한 잡기가 많지만 선거라는 또 하나의 큰 잡기가 남았다. 이 선거를 잡기로 분류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걸까. 선량하고 큰 선택, 선거제도를 잡기로 분류한다면 이거야 ‘가이갸 뒷다리’도 모르는 무식의 소치로도 볼 수 있지만 그런 얘기가 아니라 잘못된 선거폐단과 후유증 정도로 볼 때 잡기와 공통점이 많다는 점을 말 하고 싶은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도시와 지방, 농촌 할 것 없이 선거로 잔뜩 달아 올라있다. 6.2지방선거에 농·축협 선거가 뒤엉켜 하지 말라는 금전살포에 이전투구 흑색선전 비방에 편 가르기가 난무하고 오죽하면 엽총난사에 공갈협박 자살사례까지 그야말로 패가 멸족하는 만신창이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이건 다 따지고 보면 ‘나 잘났오’ 하고 우겨보고 싶은 인간의 본성, 공명심 집착에서 나오는 허망하기 짝이 없는 업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욕망은 크나 그릇이 작은 인간들이 아무 성찰도 없이 튀다보면 불상사가 따르기 마련.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남성은 나 잘났음을 표방하며 뭔가를 지배하고 싶은 수컷(雄性)본능이 크다. 치국치본의 대의명분 저 밑바닥에 용트림하며 정욕보다도 뜨겁게 불타는 명예욕.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을 신앙처럼 믿으며 “이제 내가 사업으로, 축산업으로, 농업으로 애들 가르칠 만큼 가르쳤고 돈도 벌만큼 벌었는데 남은 게 무어냐? 내 이름 석 자 남기는 것 아니냐? 그래야 나도 먼저 가신 조상님 만나 뵈면 드릴 말씀이 있고 동네 체면도 서는 것 아니냐. 그래 한번 해 보는 거야. 아무개도 나만 못한데 의원도 되고 조합장도 되고 다 하더라 나라고 못하라는 법이 어디 있더냐. 누구는 날 때부터 금배지 달고 나왔더냐.”

착시, 죽음을 부른다. 나만 불행해 지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주변 사람까지 낭패의 고랑으로 몰아넣는다. 천길 단애 빙벽, 발아래 얼음의 크레바스가 이 뿌연 착시현상 때문에 통 보이질 않는다. 직선만이 민주주의의 최고의 선이라고 우겼는데 직선은 직선대로 많은 문제점을 노정시키고 있다. 지난달 29일 예산문화원강당. 2일 치러진 축협조합장 선거 후보 3인의 공명선거 다짐 겸 공약설명 연설회가 열렸다. 마이크 울림은 쩌렁쩌렁 컷지만 내용은 빈약하게 들렸다. 여성조합원인지, 후보자 가족인지 몰라도 여성들도 많이 와 열띤 응원박수를 쳤다. 저속에 만약 허영에 들뜬 남편을 둔 여인이 섞였다면. 선관위가 보여준 10분짜리 공명선거 홍보영상이 훨씬 인상적이었다.

한편 그곳에서 머지않은 아산 어느 곳에선 지난달 26일 어느 젊은 도전자가 농협조합장에 거듭 덤볐지만 당선자의 30%도 안 되는 표만 얻고 또다시 무망한 좌절을 안았다. 이런 경우 다른 곳에선 매우 심각한 후유증 사례가 있었다. 잘 들 감싸 안아주어야 한다. 무릇 대중 앞에 서려는 사람들은 자신을 세상에 내보이기에 앞서 나의 그릇크기를 재단 해봐야 한다.

<김창동 대전충남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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