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바람이 거세다. 너 나 없이 모든 농축산 생산경영체가 마케팅에 젖 먹던 힘까지 쏟고 있다. WTO(세계무역기구)체제 출범이후 농축산물시장 완전개방으로 국경 없는 무한경쟁시대가 도래한데다, 소비자의 선택폭이 넓어진데 따른 자구대책이다. 소비자로부터 선택을 받기 위해 브랜드를 만들고, 포장을 고급화하고, 포장단위를 다양화하고, 스토리텔링까지 도입한 광고ㆍ홍보 등등, 가능한 마케팅 수단은 모두 동원하고 있다. 마치 마케팅이 농축산경영의 전부인양 전력투구하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문제는 소비자의 구매의향이 마케팅에 치중하는 농축산 경영체와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 12월 발표한 ‘농업ㆍ농촌에 대한 2012년 국민의식 조사결과’에 따르면 정작 소비자들은 농축산물을 구매할 때 생산자의 마케팅 여부보다는 품질과 가격을 중시한다. 도시민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이 조사결과 37.3%가 ‘국산이든 수입이든 품질 우수성을 우선 고려해 농산물을 구입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으로 ‘가격이 비싸더라도 우리 농산물을 구입하겠다’는 도시민이 34.1%를 차지했으며, ‘우리 농산물 가격이 훨씬 비싸면 수입농산물을 구입하겠다’는 응답도 28.5%나 됐다. 특히 우리 농산물에 대한 충성도를 나타내는 ‘가격이 비싸더라도 우리 농산물을 구입하겠다’는 도시민 비중이 2010년 45.1%에서 2011년 39.1%, 2012년 34.1%로 계속해서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조사결과는 농축산경영을 할 때 마케팅보다는 고품질 농산물 생산과 생산비를 낮추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개방화시대를 맞아 농축산물 마케팅은 필요하다. 마케팅에 실패하면 농사를 아무리 잘 지었다고 하더라도 제값을 받고 농축산물을 판매하기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까지 두 팔을 걷고 농축산물 마케팅을 지원하고 나선 이유이다. 하지만 마케팅이 농축산경영의 전부는 아니다. 더구나 마케팅이 농축산경영의 본질은 더더욱 아니다. 마케팅은 농업의 본질인 생산을 제대로 한다는 전제하에 일어나는 활동이라는 점이다. 특정한 소비자를 겨냥해 맞춤형 생산을 하기도 하지만 기본은 생산이다.

2010년 세계 1위를 넘보던 일본 토요타자동차는 자동차 1000만대를 리콜하면서 수 십 년간 쌓아온 회사 명성에 먹칠을 하고 정상에서 추락했다. 토요타자동차가 이 같은 사태를 겪은 게 마케팅을 안했거나 잘못해서일까· 아니다. 품질관리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토요타자동차는 그 후 고객만족을 위한 ‘더 좋은 차 만들기’에 나서 2012년 글로벌 판매 세계 1위를 달성했다. 품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생하게 증명해주는 사례이다.

기초가 튼튼하지 못한 집은 외부를 아무리 화려하게 치장하더라도 사상누각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농축산물 품질이 좋지 않으면 마케팅을 아무리 많이 해도 소비자들로부터 지속적인 선택을 받기가 어렵다. 반대로 품질이 좋고 마케팅까지 잘하면 충성고객을 불러 모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무한경쟁시대를 맞아 마케팅은 필요하지만 마케팅에 너무 치중하다보면 농산물 품질을 높이는데 소홀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마케팅에 쏟아 부은 열정을 고품질 농산물 생산에도 불태워야 한다. 고품질에 안전하고 위생적인 농산물 생산이야말로 우리 농업과 농축산 경영체의 활로이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상생하는 길이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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