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당일치기로 설악산 산행을 했다. 하산하니 몸도 피곤하고, 서울에 올라가야한다는 부담감에 설악산 입구 설악동에서 속초시외버스터미널까지 택시를 탔다. 전에는 20분 조금 더 걸리는 거리인데 30분이 넘어도 택시는 빨간신호등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어제까지는 한가했는데 오늘 휴가객들이 많이 내려왔습니다.” 자연스럽게 택시 기사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게 됐다. “속초 인구가 (가장 많을 때보다) 2만 명 정도 줄었습니다. 젊은이들은 자녀 교육문제로 서울로 가고, 은퇴한 사람들만 들어오고 있습니다.” 결론은 속초경기가 완전히 죽었다는 게 25년간 택시운전을 했다는 기사의 말이다.
지난 수년간 고용 없는 성장기를 거치면서 “잘 돌아간다”는 얘기를 들어본지 오래됐다. 그런 가운데도 승승장구한 시장이 있다.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 이후 등산객이 급등하면서 아웃도어시장은 급성장을 해왔다. 아웃도어시장의 고객인 등산객인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당연히 도시근교 산이겠지만, 도시 밖으로 나가면 설악산이 가장 인기를 끄는 산이다. 그런데도 국내 최대 관광지라는 설악산을 끼고 있는 속초경기마저 죽었다고?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었지만 해답은 쉽게 나왔다. 주말 설악산은 찾는 많은 수의 등산객들이 산악회 버스를 이용한 무박2일 산행을 한다. 밤에 설악산에 도착해 산행하고 곧바로 귀가하는 행태이다. 이들이 지역경제에 기여할 게 뭐가 있겠는가?
서울행 버스표를 끊어 놓고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막걸리를 한 병 시켜놓고 저녁을 했다. 밥보다 먼저 나온 막걸리는 유통기간이 30일간인데도 유통기한이 하루 지났다. 소비가 얼마나 침체됐으면 유통기간이 한 달이나 되는 막걸리인데도 유통기한을 넘기다니…. 속초 지역경기의 실상을 체감했다. 여기에다 막걸리는 지역제품이 아니라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는 회사 브랜드가 붙어있었다.
지역에 제조기반이 전무하다시피하고, 그나마 힘들게 번 돈은 자녀교육 등으로 서울로 빠져나가는 구조. 속초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지역의 현실이다. 이런 구조로는 지역경제가 돌아갈 수 없다.
화제를 다시 여름휴가로 돌리면, 요즘은 휴가 전에 준비할 일이 많이 줄었다. 지방 어디를 가더라도 농협에서 운영하는 하나로마트가 자리하고 있고, 대형마트도 곳곳에 위치해 있다 보니 필요한 물건을 현지에서 편리하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에 자리한 하나로마트나 대형마트는 단순하게 도시에서 농어촌을 찾은 고객들에게 편리성만 제공해주는 게 아니다.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한몫을 한다. 물론 전제조건은 있다. 지방에 위치한 하나로마트나 대형마트가 인근지역에서 생산된 농식품이나 공산생필품을 판매한다는 전제가 선행돼야 한다.
18대 대통령선거를 거치면서 시대의 화두는 경제민주화, 즉 상생이다. 경제민주화의 초점은 대기업과 중소기업과의 상생에 맞춰져 있지만 지역경제 활성화야 말로 경제민주화가 지향하는 궁극점이 아닐 수 없다. 지방에 위치한 대형마트가 인근지역에서 생산된 농식품을 판매하는 전문코너인 로컬푸드매장을 설치해 운영하면 어떨까? 특히 로컬푸드매장은 지역 생산자나 생산자단체에게 운영권을 주고, 활성화를 적극 지원하면 좋지 않을까? 도심에 위치한 대형마트 매장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것이야 말로 대형마트와 지역과의 상생이고,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 아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