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물자주율 향상을 위해 2010년부터 정부 주도로 추진되고 있는 ‘국가곡물조달시스템 구축사업’.

국가곡물조달시스템 구축사업은 2009년 8월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이명박 전임 대통령이 밀가루공급과 유통과정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라는 지시에 따라 2010년 7월 당시 농림수산식품부가 국제곡물사업에 참여키로 보고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이후 3년 여간의 사업추진이 총체적 난맥상을 보이며 이번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난타를 당하고 말았다.

국가곡물조달시스템은 해외에서 곡물을 확보해 평상시 식량도입단가를 낮추고 식량위기 시에는 안정적으로 곡물을 국내에 들여와야 한다는 ‘곡물자주율’ 향상차원에 있다.

하지만 이를 정부 대행하고 있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사전준비 없는 조급함이 부른 과오가 도마위에 오른 것이다.

우선 세계 곡물시장을 5개 곡물메이저사가 80%나 장악하고 있는 세계 곡물시장과 폐쇄적인 진입장벽을 특징으로 하는 미국에서 산지엘리베이터를 연차별로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산지엘리베이터는 수출엘리베이터와 곡물판매가 결합돼야 하지만 사업초기 이를 간과한 성급한 사업추진으로 인해 반쪽짜리 곡물조달시스템이라는 문제점을 노출했다.

여기에 확보곡물에 대한 안정적인 소비를 위해 수요자가 참여하는 형태의 시스템을 구축해야 했으나 이 역시 간과했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실제 aT가 국가곡물조달시스템 구축을 위해 미국 현지에 세운 법인 AGC(aT Grain Company) 주주 참여기업을 보면 삼성물산의 경우 곡물전문상사가 아니며 한진이나 STX도 운송업체에 머문다. CJ나 농협사료와 같은 곡물 수요자를 포함하지 않은 한계를 노출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 노출은 예견돼 있었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5년 이상 500억원이 투입되는 농림해양수산분야 사업은 예비타당성 조사를 갖고 그 결과를 국회에 보고해야하지만 당시 농식품부는 예산반영 시간촉박이라는 이유로 기획재정부와 긴급 협의를 통해 날림으로 예산에 반영한 것이다.

최소한의 예비타당성 조사라도 거쳤다면 예산만 낭비하고 있는 사업초기의 문제점 노출을 조금이나마 줄 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 농협 격인 ‘젠노’는 1978년 곡물자회사 ‘젠노 그레인’을 미국에 설립, 1988년 미국계 곡물기업 ‘CGB''를 인수하기 시작해 현재 미국 곡창지대 미시시피강유역에서 뉴올리언스 항구로 이어지는 일련의 엘리베이터를 보유하며 일본 곡물 수입량의 30%까지 취급하고 있다.

여기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안은 일본 젠노가 수입곡물의 30%를 취급하기 까지는 35년에 달하는 시간과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국가곡물조달시스템 구축을 위한 사업추진은 이제 갓 3년을 넘기고 있다.

지금이라도 조바심을 버리고 중장기적인 측면의 면밀한 사업검토를 통해 사업을 추진, 지금까지 잃어버린 3년이 되풀이돼 잃어버린 30년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남종 농수산식품팀장
저작권자 © 농수축산신문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