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는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지구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석유는 고갈되고 있으며, 기후는 점점 더 온난화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농지는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자원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는 3분의 2가 산으로 돼 있기 때문에 농지는 우리나라에서 매우 희소한 자원이기도 하다.
역사에서 보면 농지를 어떻게 활용했는가에 따라 국가의 흥망성쇠가 갈렸음을 알 수 있다. 기원전 약 2000년 경 유대인들 사이에는 모세의 농지법이 적용됐다. 땅을 가진 자는 모두 하느님의 소작농이라는 전제 하에 1)누구도 영원토록 농지를 팔지 못한다, 2)성직자는 농지를 소유할 수 없다, 3)농지는 오로지 경작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균등하게 분배한다, 4)농지의 경계선에는 경계석을 세우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 경계석을 옮기는 사람은 누구든지 신의 처벌을 받는다, 5)농지에 대한 모든 빚은 50년마다 완전히 탕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이 훌륭한 율법에도 불구하고 부자들은 채무자의 빚을 탕감해주지 않거나 토지를 이용해 재산을 불리는가 하면 땅을 목장이나 건축부지로 마음 내키는 대로 용도를 변경하기도 했다고 한다.
로마제국의 초기에는 농민을 보호하는 법이 있었다. 정복한 토지는 모두 국가에 귀속됐고, 전쟁에서 공훈을 세운 병사들이 귀향하면 국가에서는 이들에게 땅을 주어 농사를 짓게 했다. 이 병사들이 토지를 개간하면 그대로 그들의 소유가 됐다. 그러나 결국 소농들의 땅은 대농들에게 집중되고 말았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한 때 그라쿠스 형제가 나타나 농지소유를 제한했던 고대의 법률을 부활시키기도 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대지주들은 그들의 토지를 수익성이 좋은 목장으로 사용하고, 곡물은 해외의 정복지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조달했다.
로마제국은 이러한 라티푼디움의 폐해로 몰락하게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중세에는 인간으로서는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기아와 질병의 시대를 지나게 된다. 중세 봉건시대에는 영주들이 거대한 토지를 소유하고, 이곳에서 농노들이 농사를 지었다. 1350년대 흑사병으로 유럽인구의 약 4분의 1이 사망했었던 당시, 농노들은 일시적으로나마 영주들로부터 노동력 확보 차원에서 보호를 받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가혹하게 수탈을 당해 식량생산이 위축되고, 그 결과 기아의 시대가 오랜 기간 지속되는 ‘역사의 후퇴’를 가져오게 된다.
유럽의 기아는 아메리카 신대륙으로부터 전래된 옥수수와 감자에 힘입어 한때 완화되기도 했지만 산업혁명의 진전과 함께 17세기 영국에서 농지에 양이나 소를 키우는 소위 인클로저가 확산되고, 1820년대 아일랜드에 감자역병이 발생해 또 다시 기승을 부리게 된다.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대혁명도 사실은 배고픔을 참지 못한 시민들이 봉기한 결과였다.
이처럼 농지를 어떻게 이용하느냐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다. 우리나라는 1949년 농지개혁법을 제정해 자작농을 육성했다. 당시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던 농업인들의 경제가 안정되면서 우리는 60년대 이후 그 유례를 찾기 힘든 고도성장을 구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은 65년 전과는 전혀 다르다. 고령 농업인의 은퇴가 증가하면서 농지는 점점 비농업인의 소유로 바뀌고 있다. 또 농지의 약 3분의 2는 경사지에 위치하는데, 농기계를 쓸 수 있을 만큼 정리되지 않으면 아예 농지로는 쓸모없게 돼 임야로 되돌아간다. 농지는 사유재산이면서도 공익성이 강한 국가적 자원이다. 농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임대차제도를 더욱 보완하고, 또 기계화 농업에 알맞은 형태로 정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 농촌진흥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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