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자유무역협정)를 찬성하는 입장에서 반대하는 쪽을 바라보는 시각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해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준돼야 한다는 관점과 집단이기주의로 내모는 몰이해적 시각이다. 전자의 입장에 선 사람들도 반대론이 확산되자 후자 쪽으로 급속하게 선회하면서 자신들의 논리를 내세우며 반FTA론자라는 둥 마치 FTA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국가 발전의 발목을 잡는 ‘적색분자’로 치부되고 있다.

이를 확대·발전시키는 발전기 역할을 일부 언론 등이 꾸준히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자못 충격적이다. 일전에 한 독자로부터 문의전화를 받았다. 신문에 기자재업체가 자사 제품을 설명하는 돌출형태의 광고가 게재됐는데 그게 광고인지 아니면 기자가 쓴 글인지 분간이 어려워 물어봤다는 것이다.

그건 기사가 아니라 광고라는 설명을 듣자마자 독자가 한 말이 귓전에 맴돈다. “아 그렇군요. 나는 그것이 기자가 쓴 기사인 줄 알고 사려고 했었는데 광고였군요. 요즘엔 광고도 참 교묘하게 내네요.” 그 독자가 그 기자재를 샀는지 안 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말투로 보면 당연히 사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기자에 대한 신뢰도가 얼마나 높은지는 그 독자뿐만 아니라 간간히 걸려오는 전화에서도 잘 나타난다.

며칠 전 모 신문의 기자는 기자수첩에서 미국의회 민주당 지도부가 한·미FTA를 지지할 수 없다는 성명을 냄과 동시에 국내 반대론자들이 전문을 전자메일로 배포하면서 반대 논리의 근거로 삼고 있다고 조롱했다. 또 민주당의 성명은 반대파의 말과 달리 우리 쪽의 입장에서 협상이 잘됐음을 입증하는 사례임에도 미국의 민주당이 반대하니까 우리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자가당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아직도 왜 각계 시민사회단체·종교계·여성계 등이 한·미FTA를 졸속체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지 귀 기울이지 않고 있다. 왜 많은 기자들까지 우려를 표명하면서 반대하고 나서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의 입장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들의 주장은 협상 저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선 대책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일부 언론에서 조차 지금의 상황을 1960~70년대 ‘경부고속도로 건설’ 반대와 비교하곤 한다. 그들은 30년 뒤 누구의 주장이 옳았는지 역사가 보여 줬다며 한·미FTA를 국가 발전의 결정적 계기로 숭배한다. 역사에 만일이라는 가정법은 없지만 한 번 묻고 싶다. 만일 그 때 경부고속도로가 없었으면 지금도 경부고속도로가 없었을까?

그의 기자수첩은 반대파들의 논리에 대해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의 표현을 빌려 ‘보호주의자·특정 이해집단의 두려움과 패배주의’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뒤돌아봐야 한다고 끝맺는다.
자유무역협정에서 항상 홀대받거나 희생당하는 쪽의 생존을 위한 비명을 패배주의에 물든 입장으로 몰아갈 수 있다는 용기가 부럽다. 자신의 터전이 쑥대밭이 될 협정에 대한 그들의 고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오히려 기자답다. 산업과 산업의 비교는 앉아서 글 쓰는 이에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촌철살인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항상 기자들이 가지고 다녀야 할 덕목이다.

농민들은 구걸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시위하는 것도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생업에서 쫓겨나고 국가적 이익이라는 그들의 명제에 희생당하는 현실에 분노하는 것이다.

<권민 농어촌경제팀장 겸 축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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